728x90 캄보디아 이해 칼럼258 캄보디아 월급: 최저임금 및 직종별 평균월급 2018년 하반기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취업률은 99.3%로서, 공식적 기업 150만명, 비공식적 기업 240만명, 농업 부문에 400만명이 종사하고, 해외취업 240만명, 공무원 50만명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 노동조합 관계자는 높은 취업률의 실상은 노점상, 모토돕기사, 툭툭기사와 소규모 자영업자가 대부분으로,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은 실직 상태에 있거나 경제적 실익이 없는 고용 환경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캄보디아의 15-65세의 취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는 정부의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캄보디아의 법정 최저임금은 2019년9월에 노동조합, 고용주 및 정부의 합의에 따라 2019년까지 $182에서 2020년부터 $190로 인상됐다. 당초에 최저임금위원.. 2020. 9. 29. 캄보디아 교육: 전공을 4개나 병행하는 대학생들 매년 10월이면 대학교마다 그해 8월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당당하게 합격하고 자랑스럽게 입학하는 앳된 얼굴의 신입생들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 시기의 감동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한다. 짐작하건대 그들이 여기까지 입성하는 데는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그 해 고등학교 졸업시험 결과에 따라 교육청소년체육부로부터 A등급부터 E등급까지 부여받은 학생들로 구성되는 각 전공의 장학생 학급을 보면 나이 분포도 고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로 대학생 복장을 하고 있어도 그들이 뿜어내는 가난은 숨겨지지 않는다. 캄보디아 교육제도는 취학전 교육(3년), 초등교육(6년), 중등교육(6년), 고등교육(2년/4년) 및 비공식교육으로 정립되어 있으며 의무교육기간.. 2020. 9. 29. 캄보디아 가족: 캄보디아는 모계사회??? 캄보디아를 모계사회로 인식하는 발로는 무엇일까? 캄보디아에서도 재산은 자녀들 모두에게 균등분배한다는데 결혼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사는 풍습 때문일까? 2019년4월16일, Facebook을 통해서 캄보디아인에게 자신들의 성명에서 성은 누구를 따르냐는 질의를 공개적으로 해봤다. 일단 캄보디아는 공식적인 성명법이나 규칙이 없기도 해서 나름 다양한 양상을 기대하며 모계의 성을 따르는 경향이 발견될까도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경향은 전혀 없었고 대다수의 응답은 아버지의 성이나 이름자를 형제들과 공유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오늘날 캄보디아 사회는 모계를 계통으로 성씨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한을 우위로 볼 수 있는 모권사회라고는 볼 수 있을까? 캄보디아의 역사가 시작되는 최초의.. 2020. 9. 29. 캄보디아 소설: 베트남 괴뢰정부 경향소설 「윌록뜨러놈」 「윌록뜨러놈(귀환)」은 띠찌후엇(1952-1987)이 1983년에 발표한 캄보디아식 경향소설이다. 작품의 주요내용은 크메르루즈 정권이 전복된 이래 젊은이의 방황과 귀환의 과정을 통해서 크메르 민족주의를 회복하고 당시의 베트남 괴뢰정부에 의해서 수립된 국가를 지키는 내용이다. 소설의 배경은 학살정권 퇴치일인 1979년1월7일 이후의 태국의 국경지대로서, 그곳은 반정부 집단들의 은신처이자 캄보디아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베트남 괴뢰정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적대적이고 비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주인공 ‘싸락’이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밀수업자로 성공하겠다고 태국 국경으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국경 근처에서 맞닥뜨리는 .. 2020. 9. 29. 캄보디아 소설: 프랑스 식민지 배경의 「꼴랍빠일린(빠일린의 장미)」 「꼴랍빠일린(빠일린의 장미)」은 녁타엠(Nhok Them; 1903-1974)이 1936년에 발표한 근대 통속소설이다. 이 소설은 고전문학 특유의 종교적 요소는 탈피했지만 주요 인물들에게서 근대적인 각성이나 자각은 엿볼 수 없다. 당연히 근대 식민지 치하에서 저항하는 이념적 메시지도 없다. 다만 갈등의 장치로 부각되는 주인공의 처지를 통해서 프랑스 식민지 치하 캄보디아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빠일린 광산에서 일개의 노동자 ‘짜으쩟’이 감히 부호의 딸과 결혼해서 신분 상승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꼴랍빠일린」에서 작가는 짜으쩟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짜으쩻의 아버지는 중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치료받고 있었다. 그는 죽.. 2020. 9. 29. 캄보디아 문학: 앙두엉 왕의 「까까이(부도덕한 여자)」 「까까이(Kakey; 부도덕한 여자)」는 앙두엉 왕(Ang Duong; 재위기간 1840-1859)이 왕자 시절에 태국에 볼모로 잡혀서 친태국 인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1815년 태국 왕에게 시문의 형식으로 지어 바친 교설적 이야기이다. 근원적으로는 부처의 전생 설화의 영향으로 창작된 태국 작품 「까까이(Kaki Klon Suphap)」의 중반부까지를 발췌해서 재창작한 작품이다. 그래서 태국 작품에서 전개되는 주인공 여성의 운명과는 달리 캄보디아 작품에서는 참혹한 죽음으로 파국을 맞음으로써 크메르 남성의 여성에 대한 독선적이고 우월적 인식을 보여준다. 캄보디아 「까까이」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 ‘까까이’ 왕비의 부적절한 외도로 인한 비극이다. 까까이는 자스민꽃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여성으로 ‘쁘럼머또앗 왕’.. 2020. 9. 29. 캄보디아 문학: 크메르 고전문학의 기본적 이해 캄보디아 문학의 민족적 대표성을 띠는 명칭은 크메르 문학이다. 시기적으로 분류하자면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시점을 전후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크메르 고전문학을 기록의 유무에 따라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문학예술 경향과 유사성을 띰을 알 수 있다. 구비문학은 민간에서 전래되는 설화인데 대부분 불교의 본생담(Jataka),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 기초한다. 기록문학은 주로 왕실이나 불교사원에서 발달했으며 내용과 형식에서 인도문화와 중국문화가 혼재한다. 크메르어의 고대 기록물로서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은 크메르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당대의 비문이다. 다음으로 오래된 것은 팔리어 불교경전을 크메르어로 번역하고 해설해서 승려들이.. 2020. 9. 29. 캄보디아 문학: 가장 유명한 이야기「똠띠우」 캄보디아 문학(이하 크메르문학)의 정수로서 서열 1위는 단연 『똠띠우(똠과 띠우의 사랑)』이다. 크메르문학을 전공하는 서양 유학생이라면 『로미오와 줄리엣』, 한국인이라면 『춘향전』과 대비해서 이해할 것이다. 캄보디아 20대 학생들도 한국문학 작품을 통해서 ‘정절’, ‘일편단심’ 또는 ‘절개’의 표현을 이해하게 되면 으레 『똠띠우』를 거론하면서 연애 또는 결혼관에 대한 사고방식을 피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똠띠우』는 아름다운 설법으로 대중을 매료시키는 젊은 승려 ‘똠’ 그리고 이에 매료된 아름다운 처녀 ‘띠우’가 주인공이다. 띠우는 설법을 마친 똠에게 불교식 예법에 따라 선물을 올리면서 현생에나 다음생 모두 함께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큰스님의 경고에도 불구하.. 2020. 9. 29. 캄보디아 근대역사: 9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탈출기 크메르왕국은 중세 암흑기 말엽에 태국과 베트남의 공동속국으로 전락하면서 국력이 극도록 쇠약해졌다. 앙두엉 왕(재위: 1840-1859)의 통치기에 잠깐의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지만 자력갱생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던 왕실은 유럽 열강을 의지처로 물색했다. 때마침 프랑스도 1862년 베트남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한 후에 태국과의 사이에서 완충지를 모색하던 중 크메르왕국으로부터 보호국을 자처하는 요청을 받았다. 마침내 1863년8월11일, 노로돔 왕(1860-1904)이 프랑스 보호령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호치민에 기반을 두고 캄보디아의 프놈펜에는 프랑스인 통감이 파견되었다. 초기에는 프랑스인 총독이 캄보디아에서 왕정의 해체를 시도했지만 캄보디아.. 2020. 9. 29. 캄보디아 근세역사: 씨엠립의 유래와 근세 암흑기의 역사 캄보디아 역사는 고대 푸난왕조(1세기-550년)와 쩬라왕조(6세기-802년), 중대 크메르제국(802년-1431년)과 암흑시대(1431년-1863년), 근대 프랑스 식민지 시대(1863년-1953년) 및 현대(1953년-)로 구분할 수 있다. 근세에 해당하는 암흑시대는 ‘Dark ages of Cambodia'를 편의상 번역했으며, 신격화된 왕권을 구축할 정도로 중세에는 위대했던 크메르제국이 근세에 들어서 중국 대륙으로부터 남하한 이민족의 침탈로 내륙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해안으로 밀려난 이후에도 국력이 쇠퇴 일로에 치닫던 시기이다. 크메르제국은 전성기 때 인도차이나반도의 주변국과 전투에서 일전일퇴를 주고받을 정도로 힘의 균형 내지는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크메르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이끌던 자야바르만7세 .. 2020. 9. 29. 캄보디아 중세역사: 자야바르만7세와 바이욘사원 씨엠립 앙코르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사원에는 웅장한 얼굴이 사면에 조각된 탑 수십여 채가 밀집해 있다. 얼굴은 당대의 자야바르만7세왕의 용안일 수도 있고 대승불교의 부처상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기에서 원거리의 용안과 어울어진 ‘인생샷’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앞전에 앙코르와트사원에서 힌두교 신화에 심취해 신계를 떠돌았다면, 앙코르톰에서 시원한 사탕수수 음료를 들이키며 들어서는 바이욘사원은 자애로운 미소를 전하는 사면상과 함께 서민의 삶이 드러나는 부조에서 인간미 넘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야바르만7세는 1181-1218년에 재위해서 크메르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통치했던 왕으로, 1122년에 다라닌드라바르만2세왕과 자야라자쭈다마니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야라자떼위 공주와 결혼했.. 2020. 9. 29. 캄보디아 중세역사: 앙코르와트는 누가 지었나요? 앙코르 유적지를 처음 입장할 당시 현지 가이드를 따라서 야무지게 걷고 달려서 알차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봤을 곳이 바로 앙코르와트의 1층 회랑의 벽면 부조이다. 힌두교 사상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및 각종 인도 신화가 그려진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를 건립한 크메르제국 절정기의 통치자 수리야바르만 2세와 군대의 행군하는 모습도 웅장하게 담겨 있어서 캄보디아의 역사를 뒷받침한다. 수리야바르만 2세(11세기~1150)는 왕족이었지만 변방에서 왕위를 이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왕권에 대한 열망과 왕재는 감출 수 없어서 1113년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백부이기도 했던 당시의 무능한 왕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왕좌를 탈환한.. 2020. 9. 29. 캄보디아 고대역사: 고대왕국과 창조신화 인도차이나반도의 광범위한 인간 정착지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도나 중국의 영향이 있기 전부터 이미 여러 토착 세력이 위세를 떨쳤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역사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캄보디아라는 명칭의 기원을 알려주는 씨엠립의 박세이 짬끄롱(Baksei Chamkrong) 비문(제작시기: 기원후 947년)을 통해서 자야바르만2세에 의해 개국한 크메르제국(802년-1431년)이 푸난(Funan)왕국과 쩬라(Chenla)왕국을 계승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푸난왕국은 해상무역국으로서 기원후 1~2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강성했으며, 쩬라왕국은 내륙국가로서 푸난왕국의 세력이 약화될 시점인 6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반까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실재했다. 쩬라.. 2020. 9. 29. 캄보디아 지방: 전국은 수도 프놈펜과 24개주로 구성 캄보디아의 행정부는 중앙정부와 주정부로 구성하며, 각 정부의 도시는 시-구-동-리, 지방은 군-면-리로 하부단위를 구성한다. 단체장은 기초의회 선거관련 법률에 따라 선출한다. 동/면장은 2002년부터 5년마다 선거구별 직접선거에 의한 최다 득표 정당이 지명하며, 동/면 기초의회 의원은 선거구별 인구에 따라 5~11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선출된 동/면 기초의회 의원들은 2009년부터 5년마다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유권자가 된다. 2017년6월4일 제4대 동/면 기초의회 선거에서 1,646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11,527명을 선출했다. 당시 CPP가 1,156선거구, CNRP가 489선거구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2019년5월26일 제3대 시/군/구 기초의회 선거에서 총 4,114.. 2020. 9. 29. 캄보디아 민족: 몽골화가 서서히 진행중인 크메르족 캄보디아인의 민족 구성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집단은 크메르족이다. 그런데 오늘날 프놈펜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캄보디아인이 과연 얼마나 크메르족이 맞을까?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인 상사나 동료들, 한국어를 공부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을 크메르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그들 중 상당수는 캄보디아의 공식 달력에 없는 중국식 명절인 춘절을 지내기 위해서 집단으로 결근하거나 결석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사람들은 ‘깟쩐’(중국계 혼혈)이라고 불리는데 확실히 생긴 모습이 좀더 기골이 훤칠하고 피부색이 밝으며 모발이 직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대의 크메르족은 1세기 이전에 인도차이나반도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주로 메콩강 저지대와 평야 지대에서 생활한다. 독일 언어학자 P.W.Schmidt(18.. 2020. 9. 29. 이전 1 ··· 14 15 16 17 18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