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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233

캄보디아 중세역사: 자야바르만7세와 바이욘사원 씨엠립 앙코르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사원에는 웅장한 얼굴이 사면에 조각된 탑 수십여 채가 밀집해 있다. 얼굴은 당대의 자야바르만7세왕의 용안일 수도 있고 대승불교의 부처상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기에서 원거리의 용안과 어울어진 ‘인생샷’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앞전에 앙코르와트사원에서 힌두교 신화에 심취해 신계를 떠돌았다면, 앙코르톰에서 시원한 사탕수수 음료를 들이키며 들어서는 바이욘사원은 자애로운 미소를 전하는 사면상과 함께 서민의 삶이 드러나는 부조에서 인간미 넘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야바르만7세는 1181-1218년에 재위해서 크메르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통치했던 왕으로, 1122년에 다라닌드라바르만2세왕과 자야라자쭈다마니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야라자떼위 공주와 결혼했.. 2020. 9. 29.
캄보디아 중세역사: 앙코르와트는 누가 지었나요? 앙코르 유적지를 처음 입장할 당시 현지 가이드를 따라서 야무지게 걷고 달려서 알차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봤을 곳이 바로 앙코르와트의 1층 회랑의 벽면 부조이다. 힌두교 사상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및 각종 인도 신화가 그려진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를 건립한 크메르제국 절정기의 통치자 수리야바르만 2세와 군대의 행군하는 모습도 웅장하게 담겨 있어서 캄보디아의 역사를 뒷받침한다. 수리야바르만 2세(11세기~1150)는 왕족이었지만 변방에서 왕위를 이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왕권에 대한 열망과 왕재는 감출 수 없어서 1113년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백부이기도 했던 당시의 무능한 왕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왕좌를 탈환한.. 2020. 9. 29.
캄보디아 고대역사: 고대왕국과 창조신화 인도차이나반도의 광범위한 인간 정착지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도나 중국의 영향이 있기 전부터 이미 여러 토착 세력이 위세를 떨쳤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역사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캄보디아라는 명칭의 기원을 알려주는 씨엠립의 박세이 짬끄롱(Baksei Chamkrong) 비문(제작시기: 기원후 947년)을 통해서 자야바르만2세에 의해 개국한 크메르제국(802년-1431년)이 푸난(Funan)왕국과 쩬라(Chenla)왕국을 계승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푸난왕국은 해상무역국으로서 기원후 1~2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강성했으며, 쩬라왕국은 내륙국가로서 푸난왕국의 세력이 약화될 시점인 6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반까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실재했다. 쩬라.. 2020. 9. 29.
캄보디아 지방: 전국은 수도 프놈펜과 24개주로 구성 캄보디아의 행정부는 중앙정부와 주정부로 구성하며, 각 정부의 도시는 시-구-동-리, 지방은 군-면-리로 하부단위를 구성한다. 단체장은 기초의회 선거관련 법률에 따라 선출한다. 동/면장은 2002년부터 5년마다 선거구별 직접선거에 의한 최다 득표 정당이 지명하며, 동/면 기초의회 의원은 선거구별 인구에 따라 5~11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선출된 동/면 기초의회 의원들은 2009년부터 5년마다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유권자가 된다. 2017년6월4일 제4대 동/면 기초의회 선거에서 1,646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11,527명을 선출했다. 당시 CPP가 1,156선거구, CNRP가 489선거구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2019년5월26일 제3대 시/군/구 기초의회 선거에서 총 4,114.. 2020. 9. 29.
캄보디아 민족: 몽골화가 서서히 진행중인 크메르족 캄보디아인의 민족 구성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집단은 크메르족이다. 그런데 오늘날 프놈펜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캄보디아인이 과연 얼마나 크메르족이 맞을까?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인 상사나 동료들, 한국어를 공부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을 크메르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그들 중 상당수는 캄보디아의 공식 달력에 없는 중국식 명절인 춘절을 지내기 위해서 집단으로 결근하거나 결석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사람들은 ‘깟쩐’(중국계 혼혈)이라고 불리는데 확실히 생긴 모습이 좀더 기골이 훤칠하고 피부색이 밝으며 모발이 직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대의 크메르족은 1세기 이전에 인도차이나반도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주로 메콩강 저지대와 평야 지대에서 생활한다. 독일 언어학자 P.W.Schmidt(18.. 2020. 9. 29.
캄보디아 국교: 광범위한 생활 종교로서의 불교 10년이상을 캄보디아에 살면서 금욕과 해탈이 단지 종교인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순간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명상법을 통해서 일상생활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정진하는 법도 배웠다. 이러한 수행법은 흔히 말하는 윗빠싸나 수행법에 기초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윗빠싸나(vipassana) 수행법은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상좌부 불교의 수행법이다. 승려를 비롯한 일반인 불자들은 이러한 수행법과 일정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함으로써 불교적인 해탈과 열반을 이루고자 한다.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알려진 기독교 사절단으로서 1555-1556년에 파송된 도미니카 교단의 한 포르투칼인은 캄보디아인들이 국왕의 허락 없이는 개종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개탄하면서 캄보디아를 떠났다고 기.. 2020. 9. 29.
캄보디아 국왕: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 세계 불가사의로 칭송받는 앙코르와트는 들어 봤어도 캄보디아라는 국가 이름은 생소했던 시절 캄보디아에 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결혼 적령기의 여성 단원들이 모일 때면 국왕이 미혼이라서 자신들 중에 누구라도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면 세기의 결혼식도 가능할 것이라 떠들곤 했다.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이랄까? "왕과 나"라는 영화 속의 율브린너를 딱 떠올리게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고는 귀공자 느낌을 물씬 풍기던 캄보디아 국왕 사진에 푹 빠져 쳐다보노라면 어느새 우아한 왈츠 선율에 몸을 싣고 있는 상상을 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간 매스컴을 통해 훈센 총리는 너무 자주 이슈화된 반면 캄보디아 왕국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진짜 주인 노로돔 시하모니(1953~) 국왕에 대한 정보는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 같다. 혼란한 시대를.. 2020. 9. 29.
캄보디아 국가체제: 캄보디아는 공산주의 국가??? 과거 오랜 역사 동안 캄보디아는 공식적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맞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는 깨어 있는 캄보디아 지식인 사이에서 독립을 위한 참신한 이데올로기였다. 한국이 일제시대 젊은 지식인이 가졌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1953년 11월, 프랑스가 캄보디아에서 식민통치를 끝낼 수밖에 없자 영민한 노로돔 시하누크(1922-2012) 국왕이 통치권을 거머쥐었다. 일제가 조선 왕실을 파괴한 데 반해 프랑스는 캄보디아에 왕실을 존속시켰던 결과이다. 당시에 미국은 필사적으로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저지하려 했고 시하누크 국왕은 중립선언을 통해 ‘서커스 외교’라고 불릴 만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양쪽 진영으로부터 캄보디아의 실리를 챙겼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1955.11~1975.4)을 기점으로 미..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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