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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국가&정치87

캄보디아 정치: 포스트 훈센, 훈 마넷(Hun Manet) 훈마넷(Hun Manet)은 국방부 산하 캄보디아왕립군대(RCAF) 4성급 장군이며 2018년부터 최대규모의 캄보디아왕립육군 사령관이다. 그는 현재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와 분라니 여사의 장남으로서 프놈펜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뒤에 1995년에 군인이 되면서 그 해에 뉴욕의 웨스트포인트에 소재한 미국육군사관학교(USMA)로 진학했다. 1999년에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해당 사관학교 최초의 캄보디아인 졸업생이 됐다. 비록 훈마넷 사령관은 공개적으로 밝힌 바가 없지만 만인이 그를 훈센 총리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훈마넷은 크메르루즈 집권기였던 1977년10월20일에 깜뽕짬주 메못지구의 꺼트마마을에서 훈센 부부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날 밤에 지붕 위로 밝은 빛이 비쳤다는데 이를.. 2020. 10. 2.
캄보디아 화폐: 왕실 초상과 고고학 문화유산 갤러리 캄보디아에서는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화폐를 통용할 수 있는 편이다. 국경지역에 따라서는 인접국의 화폐도 함께 사용하고 심지어 한국인이 많은 관광지에서는 한국의 원화도 취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달러의 통용은 모든 곳에서 과히 대세라서 자국 화폐인 리엘화의 존재는 깡그리 무시되는 실정이다. 캄보디아 정부로서도 리엘화를 적극적으로 시장에 유통시키려고 다양한 정책으로 방어하지만 외국인의 체감으로도 여전히 리엘화는 달러화의 부수적인 화폐로 취급되는 듯하다. 2019년10월4일자 미화 1달러는 팔 때 4085리엘, 살 때 4103리엘이다. 보통 달러화로 가격이 책정된 슈퍼마켓이나 까페에서는 손님의 거스름돈을 정산할 때 일괄 4100리엘로 계산하고, 그밖의 재래시장이나 노점식당 등은 4000리엘로 .. 2020. 10. 2.
캄보디아 정당: 초강력 여당과 국회의석 1도 없는 군소야당 캄보디아는 1993년에 입헌군주국을 선포한 이래로 1998년 제2차 총선부터 CPP가 승리함에 따라 현재까지 CPP의 일당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헌법에서는 다당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야당의 권력 창출 기회는 막혀 있거나 차단당한다. 2013년 제5대 총선에서 CNRP의 약진으로 국회 전체 123석 중에서 무려 55석을 석권했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은 훈센 총리의 의지에 따라 무력해져서는 CNRP 소속 의원들의 언동이나 행보는 내란죄 내지는 반역죄 등으로 내몰리고 결국은 2018년 총선을 앞두고 CNRP는 혁파됐다. CPP(Cambodian People's Party; 캄보디아 국민당)의 전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여 1951년 9월 창당된 ‘깜뿌찌.. 2020. 9. 29.
캄보디아 야당: 끔쏘카(Kem Sokha) 총재의 고달픈 저항 사실 끔쏘카 총재를 그렇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삼랑시보다는 대중적으로 카리스마가 유약하고 별로 약삭빨라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외모를 거론해서는 안 되겠지만 다소 왜소한 체구가 덜 매력적이다. 아! 그런데 어느 언론사에서 내놓은 사진에서 가택에 연금되어, 고개를 떨구며 눈물짓는 노모 옆에서 허공을 향해 전하는 그의 지친 미소는 뭐랄까, 어디서나 처연한 정치인의 시간은 유사하게 반복되는 것 같다. 그의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파란만장한 민주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정치인 고 김영삼 대통령의 가택연금 시절 사진과도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끔쏘카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2012년부터 CNRP(캄보디아구국당)의 부총재직을 수행하다가 2015년11월에 삼랑시 총재가 범죄자가 되어 입국을.. 2020. 9. 29.
캄보디아 경제: 서방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지난 8월, 유명 유투브 채널에서 한국계 부동산 전문가는 오늘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토지가격 상승기류는 아직까지 ‘거품’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제가 참고한 유튜브 영상은 아래와 같으며, 관련 내용은 영상의 중반부 이후에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지가상승이 주춤할 것이라던 전년도의 어느 현지 부동산기업의 예상이 얼마나 쉽게 빗나갔는가를 알게 한다. 이렇듯이 연간으로 전망이 충돌하는 배경에는 캄보디아 국내 경제의 견인차가 되는 예측불허의 외부환경이 2019년에도 캄보디아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중국 무역전쟁의 여파는 캄보디아에 좋은 기회가 됐다. 즉,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 미국이 계속적으로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중국 소재 공장들이 감행한 탈출 러시가 .. 2020. 9. 29.
캄보디아 야당: 삼랑시(Sam Rainsy), 훈센의 최대 정적 삼랑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2013년 7월 19일, 프놈펜 공항부터 러시안 대로를 따라 지지자들이 그의 입국을 열렬히 환영하던 모습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캄보디아에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고 얼마나 다들 열광했던가! 그의 귀환으로 대학가 젊은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생기가 넘쳤고 “도우! 도우!(바꿔! 바꿔!)”를 외치며 거리 행진하던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포착될 때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여는 현장에 함께 있노라는 감동에 울컥하곤 했다. 이렇듯 명실상부 캄보디아의 유명 야당 정치인 삼랑시는 프랑스 국적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2008년 명예훼손 혐의로 구형되자 프랑스로 귀국했다가, 2013년에 국왕의 사면으로 입국하지만, 2015년에 사면.. 2020. 9. 29.
캄보디아 총리: 스트롱맨 훈센(Hun Sen)은 누구? 훈센, 그는 과연 캄보디아의 현존하는 대영웅이다. 그럼에도 일찍이 그는 뭍평민이 롤모델로 삼을 만큼 가진 것이 변변찮은 사람이었다. 그에 관한 소개의 어디에나 성장 배경 또는 학력은 구차스러울 만큼 짤막하다. 그런 그가 1985년 이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서 최장의 집권기간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특유의 자존심과 긍지는 캄보디아인의 기본 자질인 마냥 전세계를 상대로 아쉬울 것 없이 언제나 당당함을 과시한다. 그는 1952년8월5일(공식적으로는 1951년4월4일) 캄보디아 깜뽕짬 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승려 출신으로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저항군으로 활동한 바 있다. 훈센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13세부터 프놈펜 사원에 거주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970년 무.. 2020. 9. 29.
캄보디아 지방: 전국은 수도 프놈펜과 24개주로 구성 캄보디아의 행정부는 중앙정부와 주정부로 구성하며, 각 정부의 도시는 시-구-동-리, 지방은 군-면-리로 하부단위를 구성한다. 단체장은 기초의회 선거관련 법률에 따라 선출한다. 동/면장은 2002년부터 5년마다 선거구별 직접선거에 의한 최다 득표 정당이 지명하며, 동/면 기초의회 의원은 선거구별 인구에 따라 5~11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선출된 동/면 기초의회 의원들은 2009년부터 5년마다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유권자가 된다. 2017년6월4일 제4대 동/면 기초의회 선거에서 1,646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11,527명을 선출했다. 당시 CPP가 1,156선거구, CNRP가 489선거구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2019년5월26일 제3대 시/군/구 기초의회 선거에서 총 4,114.. 2020. 9. 29.
캄보디아 민족: 몽골화가 서서히 진행중인 크메르족 캄보디아인의 민족 구성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집단은 크메르족이다. 그런데 오늘날 프놈펜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캄보디아인이 과연 얼마나 크메르족이 맞을까?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인 상사나 동료들, 한국어를 공부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을 크메르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그들 중 상당수는 캄보디아의 공식 달력에 없는 중국식 명절인 춘절을 지내기 위해서 집단으로 결근하거나 결석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사람들은 ‘깟쩐’(중국계 혼혈)이라고 불리는데 확실히 생긴 모습이 좀더 기골이 훤칠하고 피부색이 밝으며 모발이 직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대의 크메르족은 1세기 이전에 인도차이나반도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주로 메콩강 저지대와 평야 지대에서 생활한다. 독일 언어학자 P.W.Schmidt(18.. 2020. 9. 29.
캄보디아 국교: 광범위한 생활 종교로서의 불교 10년이상을 캄보디아에 살면서 금욕과 해탈이 단지 종교인만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순간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명상법을 통해서 일상생활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정진하는 법도 배웠다. 이러한 수행법은 흔히 말하는 윗빠싸나 수행법에 기초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윗빠싸나(vipassana) 수행법은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상좌부 불교의 수행법이다. 승려를 비롯한 일반인 불자들은 이러한 수행법과 일정한 계율을 지키고 실천함으로써 불교적인 해탈과 열반을 이루고자 한다.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알려진 기독교 사절단으로서 1555-1556년에 파송된 도미니카 교단의 한 포르투칼인은 캄보디아인들이 국왕의 허락 없이는 개종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개탄하면서 캄보디아를 떠났다고 기.. 2020. 9. 29.
캄보디아 국왕: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 세계 불가사의로 칭송받는 앙코르와트는 들어 봤어도 캄보디아라는 국가 이름은 생소했던 시절 캄보디아에 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결혼 적령기의 여성 단원들이 모일 때면 국왕이 미혼이라서 자신들 중에 누구라도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면 세기의 결혼식도 가능할 것이라 떠들곤 했다.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이랄까? "왕과 나"라는 영화 속의 율브린너를 딱 떠올리게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고는 귀공자 느낌을 물씬 풍기던 캄보디아 국왕 사진에 푹 빠져 쳐다보노라면 어느새 우아한 왈츠 선율에 몸을 싣고 있는 상상을 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간 매스컴을 통해 훈센 총리는 너무 자주 이슈화된 반면 캄보디아 왕국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진짜 주인 노로돔 시하모니(1953~) 국왕에 대한 정보는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 같다. 혼란한 시대를.. 2020. 9. 29.
캄보디아 국가체제: 캄보디아는 공산주의 국가??? 과거 오랜 역사 동안 캄보디아는 공식적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맞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는 깨어 있는 캄보디아 지식인 사이에서 독립을 위한 참신한 이데올로기였다. 한국이 일제시대 젊은 지식인이 가졌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1953년 11월, 프랑스가 캄보디아에서 식민통치를 끝낼 수밖에 없자 영민한 노로돔 시하누크(1922-2012) 국왕이 통치권을 거머쥐었다. 일제가 조선 왕실을 파괴한 데 반해 프랑스는 캄보디아에 왕실을 존속시켰던 결과이다. 당시에 미국은 필사적으로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저지하려 했고 시하누크 국왕은 중립선언을 통해 ‘서커스 외교’라고 불릴 만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양쪽 진영으로부터 캄보디아의 실리를 챙겼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1955.11~1975.4)을 기점으로 미..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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