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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역사&전통39

캄보디아 소수민족: 짬(Cham) 무슬림족의 흥망성쇠 전세계적으로 대략 80만명에 불과한 짬족은 주로 메콩강을 젖줄로 하는 깜뽕짬주 75%, 베트남 남부 20%가 거주한다. 태국에는 라마1세 통치기(1782-1809)에 베트남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이주한 세대가 4천명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크메르루즈 정권기(1975-1979) 종교박해로 대규모로 이주해서 형성된 교민사회가 빠르게 말레이족으로 동화되고 있다. 이처럼 짬족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남부의 수니파 무슬림사회의 핵심이라지만 강성했던 역사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짓밟히고 유린당하며 오늘날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짬족은 몬족과 크메르족을 아우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으로서 대략 5,000년전부터 동남아시아 본토에 거주했으며, 4,000년전에는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번성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후 2세기에.. 2020. 10. 22.
캄보디아 장례: 하얀색 악어 깃발과 장례식 문화 캄보디아의 장례식 전통도 여느 나라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상황과 신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 국민의 95%를 차지한다는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이해하되 고대부터 민간에 뿌리내린 힌두교적인 전통까지 복합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장례식 문화에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윤회의 사이클에 순응하며 망자가 순조롭게 다음 생을 살기를 염원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상을 당한 집에서는 들어오는 길목에 하얀색 악어 깃발을 3일 내지 7일의 장례기간 동안 하늘 높이 세운다. 그리고 직계가족은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입혀 관에 안치한 뒤에 시신의 주변에 꽃과 망자의 사진 등을 차려 놓는다. 죽은 사람이 처녀면 예쁘게 화장해주고, 노인이거나 남자면 향수를 뿌려준다. 시신의 입술에는.. 2020. 10. 16.
캄보디아 결혼: 요즘의 전통적 결혼식 풍속도 캄보디아 결혼식의 풍속도는 프놈펜에서 2019년11월 현재, 과거와 비교해서 많이 바뀌고 있다. 프놈펜시청은 2019년7월부터 길거리를 점거해서 천막을 치고 결혼식을 치르는 행위를 금지함에 따라 동네가 떠나가라 음악을 틀고는 2,3일 동안 길가의 대형 천막아래서 결혼식을 치르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신에 프놈펜의 도심과 외곽지대의 궁전을 방불케 하는 웨딩홀에서 6개월전부터 예약한 커플들이 길게는 1주일 동안 치르는 캄보디아식 전통 결혼식을 단 하루만에 치러 버리는 문화가 정립되고 있다. 2015년에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40여명의 학생들 중에서 4년이 지난 현재 대략 50%가량이 결혼식을 치렀다. 대학교에서 학업을 종료한 날부터 매년 두세 커플이 결혼을 하다가 최근 1년.. 2020. 10. 4.
캄보디아 무술: 크메르 특공무술 “보까따오(Bokator)” 캄보디아는 아시안게임 최초의 금메달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의 태권도 부문에서 획득했다. 그 선수는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전국은 태권도 열풍으로 여기저기서 태권도장이 생겨났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인접국인 태국은 ‘옹박’이라는 영화로도 알려져 있듯이 무에타이가 유명한데 캄보디아는 국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무술이 뭘까? 그 순간 크메르현대문학 강의를 통해서 읽었던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작품 하나가 떠올랐다. "វិលរកទ្រនំ(윌록뜨러놈, 귀환)"이라는 소설인데,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보까따오 기술을 전수받은 주인공이 강력한 태국 군인에 맞서 짜릿하게 승리하는 경기 장면이 자부심 가득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까따오(ល្បុក្កតោ; L'Bokator)는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사자치기 전법’.. 2020. 9. 30.
캄보디아 근대역사: 9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탈출기 크메르왕국은 중세 암흑기 말엽에 태국과 베트남의 공동속국으로 전락하면서 국력이 극도록 쇠약해졌다. 앙두엉 왕(재위: 1840-1859)의 통치기에 잠깐의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지만 자력갱생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던 왕실은 유럽 열강을 의지처로 물색했다. 때마침 프랑스도 1862년 베트남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한 후에 태국과의 사이에서 완충지를 모색하던 중 크메르왕국으로부터 보호국을 자처하는 요청을 받았다. 마침내 1863년8월11일, 노로돔 왕(1860-1904)이 프랑스 보호령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호치민에 기반을 두고 캄보디아의 프놈펜에는 프랑스인 통감이 파견되었다. 초기에는 프랑스인 총독이 캄보디아에서 왕정의 해체를 시도했지만 캄보디아.. 2020. 9. 29.
캄보디아 근세역사: 씨엠립의 유래와 근세 암흑기의 역사 캄보디아 역사는 고대 푸난왕조(1세기-550년)와 쩬라왕조(6세기-802년), 중대 크메르제국(802년-1431년)과 암흑시대(1431년-1863년), 근대 프랑스 식민지 시대(1863년-1953년) 및 현대(1953년-)로 구분할 수 있다. 근세에 해당하는 암흑시대는 ‘Dark ages of Cambodia'를 편의상 번역했으며, 신격화된 왕권을 구축할 정도로 중세에는 위대했던 크메르제국이 근세에 들어서 중국 대륙으로부터 남하한 이민족의 침탈로 내륙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해안으로 밀려난 이후에도 국력이 쇠퇴 일로에 치닫던 시기이다. 크메르제국은 전성기 때 인도차이나반도의 주변국과 전투에서 일전일퇴를 주고받을 정도로 힘의 균형 내지는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크메르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이끌던 자야바르만7세 .. 2020. 9. 29.
캄보디아 중세역사: 자야바르만7세와 바이욘사원 씨엠립 앙코르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사원에는 웅장한 얼굴이 사면에 조각된 탑 수십여 채가 밀집해 있다. 얼굴은 당대의 자야바르만7세왕의 용안일 수도 있고 대승불교의 부처상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기에서 원거리의 용안과 어울어진 ‘인생샷’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앞전에 앙코르와트사원에서 힌두교 신화에 심취해 신계를 떠돌았다면, 앙코르톰에서 시원한 사탕수수 음료를 들이키며 들어서는 바이욘사원은 자애로운 미소를 전하는 사면상과 함께 서민의 삶이 드러나는 부조에서 인간미 넘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야바르만7세는 1181-1218년에 재위해서 크메르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통치했던 왕으로, 1122년에 다라닌드라바르만2세왕과 자야라자쭈다마니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야라자떼위 공주와 결혼했.. 2020. 9. 29.
캄보디아 중세역사: 앙코르와트는 누가 지었나요? 앙코르 유적지를 처음 입장할 당시 현지 가이드를 따라서 야무지게 걷고 달려서 알차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그 중에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봤을 곳이 바로 앙코르와트의 1층 회랑의 벽면 부조이다. 힌두교 사상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및 각종 인도 신화가 그려진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를 건립한 크메르제국 절정기의 통치자 수리야바르만 2세와 군대의 행군하는 모습도 웅장하게 담겨 있어서 캄보디아의 역사를 뒷받침한다. 수리야바르만 2세(11세기~1150)는 왕족이었지만 변방에서 왕위를 이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왕권에 대한 열망과 왕재는 감출 수 없어서 1113년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백부이기도 했던 당시의 무능한 왕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왕좌를 탈환한.. 2020. 9. 29.
캄보디아 고대역사: 고대왕국과 창조신화 인도차이나반도의 광범위한 인간 정착지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도나 중국의 영향이 있기 전부터 이미 여러 토착 세력이 위세를 떨쳤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역사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캄보디아라는 명칭의 기원을 알려주는 씨엠립의 박세이 짬끄롱(Baksei Chamkrong) 비문(제작시기: 기원후 947년)을 통해서 자야바르만2세에 의해 개국한 크메르제국(802년-1431년)이 푸난(Funan)왕국과 쩬라(Chenla)왕국을 계승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푸난왕국은 해상무역국으로서 기원후 1~2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강성했으며, 쩬라왕국은 내륙국가로서 푸난왕국의 세력이 약화될 시점인 6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반까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실재했다. 쩬라..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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