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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국가&정치

캄보디아 민족: 베트남의 토착 크메르인,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

by 까페브라운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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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이 프랑스에 의해서 베트남에 할양된 65주년을 애통해하며 거리 행진하는 활동가들(출처: cambodiadaily.com)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Khmer Krom)은 베트남 남부의 토착 크메르인으로, 태국의 북부 크메르인과 구분해서 ‘남부 크메르인’으로도 불린다. 베트남에서는 이들을 53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인정해서 크메르인(Nguoi Khmer)이라고 칭한다. 대부분의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은 과거 크메르 제국의 남동쪽 영토였던 현재의 호치민과 메콩 삼각주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식민 통치기간(1864-1948)에 유럽인들이 코친차이나(Cochinchina)로 불렀으며 독립 후에는 남베트남에 편입되어 현재의 베트남 영토로 자리매김했다.

 

코친차이나 지역으로 명시된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출처: wikipedia.org)

베트남 정부 수치(200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의 인구는 1,260,640명이다. 반면에 Taylor(2014)The Khmer lands of Vietnam이나 크메르-깜뿌찌아 끄라옴 연합(KKF)에서 보고한 데 따르면 최소 700만 내지 1천만 이상에 이른다. 그래서 인구분포 상으로 캄보디아 본토를 제외하고는 베트남에 가장 많은 크메르인이 거주한다. 이들 가운데 25만여 명은 베트남에서 이주하여 현재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 살고 있다. 언어/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이들은 캄보디아 내의 크메르인과 여러 면에서 구별된다.

 

2019 년 6 월 ,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을 ' 상실한 70 주년 ' 을 애통해하는 행사에서 시소왓 뽕니어리 모니뽕 공주와 활동가들(출처: vodenglish.news)

역사적으로 수 세기에 걸쳐 태국과의 잦은 전쟁으로 약화된 크메르 왕국은 17세기에 메콩 삼각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 당시 짜이쩨타 2세 왕(1618-1628)은 베트남 내전을 피해서 이주한 베트남 난민들에게 작은 어촌이었던 지금의 호치민에 정착하도록 허락했다. 베트남인 정착촌은 꾸준히 성장해서 지역의 중심 항구로 발전했고 더 많은 정착민을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Hue)에 있던 남베트남의 통치자 응우옌 왕조는 1698년에 크메르 왕국의 동의 없이 호치민을 베트남의 관리 영역으로 통합하면서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했다.

 

이후 반태국적인 정서가 강했던 앙짠2세 왕(1806-1834)은 베트남과 결혼 동맹을 맺고 호치민의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베트남에 넘겨 주었. 이때부터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 모두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한편 당시에 유입된 베트남의 대승불교와 유교문화는 크메르인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었고 캄보디아 전역에서 엄청난 반발과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민심을 이용해서 친태국파 앙두엉 왕(1840-1859)이 베트남이 세운 꼭두각시 왕을 몰아내고 왕좌를 탈환하지만 그 대가로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의 절반을 베트남에 할양했다.

 

태국과 베트남의 침탈에 진퇴양난이던 앙두엉 왕은 국운을 의탁할 외세를 찾았고 결국은 1863년에 캄보디아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게 했다. 식민지 통치 기간에도 남베트남은 계속적으로 남하했는데, 이에 따라 코친차이나 지역은 수세기 전 캄보디아가 통치했던 남부지역 거의 대부분을 언급하는 말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지배력이 약해진 프랑스 정부는 옛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다시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으로 19496월 우파 괴뢰정부인 베트남국을 세웠. 이때 23개 지방과 섬으로 구성된 코친차이나 지역을 베트남국에 편입하도록 결의함에 따라 프랑스가 직접 베트남에 양도한 셈이다.

 

이후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1955-1975)과 크메르루즈 정권(1975-1978)이 집권하는 동안까지 캄보디아는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의 탈환을 위해 베트남을 상대로 바위에 날계란을 치는 형국을 전개했다. 베트남 전쟁기에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은 민병대를 조직해서 분리독립을 꾀했고, 친미 정권이었던 론놀 정부(1970-1975)도 남베트남에서 메콩 삼각주의 탈환을 계획했다. 그런데 남베트남이 패전하고 북베트남에 쫓겨서 캄보디아 본토에 합류한 깜뿌찌아 끄라옴 민병대는 1976년에 크메르루즈 정권으로부터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리고는 1978년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답시고 깜뿌찌아 끄라옴 지역의 재탈환을 위해 베트남을 공격했다가 베트남 공산군의 침공으로 크메르루즈가 몰락했다. 오늘날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은 베트남 정부의 무시와 차별 속에서 인권이 상당히 침해받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들은 자유롭게 종교를 실천하고 문화를 전수할 권리를 거부당하며 일반적으로 2 시민으로 취급된다. 이에 따른 크메르인의 베트남에 대한 적개심은 캄보디아 내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에 대해서 폭력성을 표출한다.

 

2015년 6월,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 베트남 국기를 태우며 시위하는 캄보디아 승려들과 활동가들(출처: thediplomat.com)
깜뿌찌아 끄라옴을 프랑스 식민정부가 베트남에게 양도한 것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깜뿌찌아 끄라옴 활동가들(출처: nbcambodia.com)
깜뿌찌아 끄라옴 사람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출처: ikkp-rsd-hrl.org)
반베트남 정서로 베트남인 거주민의 차량을 부수며 폭주하는 시민들(출처: asiancorrespondent.com)

 

 

 

최초 작성일: 2021년12월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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