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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국가&정치

캄보디아 설화: “기쁨을 주는 산” 끼리룸의 전설

by 까페브라운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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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룸 정상(출처: movetocambodia.com)

 

프놈펜 도심에서 1시간여를 벗어나면 소나무 향이 가득한 끼리룸 국립공원(Kirirom National Park)을 갈 수 있다. 건기가 시작된 이맘때는 기온도 선선해서 산자락에 즐비한 리조트 인근에 차량을 주차하고 산 중턱이나 정상까지 산책하듯이 걸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 새벽이슬이 맺힌 수풀의 싱싱한 풀 내움은 지루할 수 있는 산책길을 정상까지 이끌어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을 타고 완연하게 전하는 솔잎의 향연은 끼리룸을 찾는 최고의 보상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끼리(Kiri; 산)’와 ‘룸(Rom; 기쁘다)’이 합쳐진 끼리룸은 “기쁨을 주는 산”이다.

 

끼리룸 국립공원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꽃장식 화관 판매상(출처: khmertimeskh.com)
소나무 향취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끼리룸 정상의 산책로(출처: vanatravel.com)
끼리룸 정상 근처의 계곡에 조성된 휴양시설(출처: seylaheng.blogspot.com)

 

끼리룸은 씨소왓 모니봉 국왕(1927-1941재위)이 개명하기 전 1930년대 이전까지 두 개의 산봉우리 이름인 프놈 워웡(Phnom Vorvong)프놈 쏘웡(Phnom Sorvong)으로 불렸다. 이 산에 얽힌 워웡과 쏘웡 이야기두 명의 크메르 왕자가 불명예에 빠지고 일련의 시련 끝에 지위를 되찾는 내용이다. 20세기초 프랑스 식민지 당국의 관리 오귀스트 파비에(Auguste Pavie; 1847-1925)가 구전설화를 번역해서 서양에 전했다. 이를 토대로 2019년에 51개의 컬러 삽화와 함께 영어본도 출간되어서 캄보디아의 문화사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 워웡과 쏘웡 이야기 ” 를 바탕으로 19 세기에 제작된 삽화(출처: wikipedia.org)

옛날에 쏘리야 왕이 끄라쏜 왕국을 통치할 때 첫째 부인 벙띠어 왕비는 워웡과 쏘웡이라는 두 왕자가 있었고, 둘째 부인 몬띠어 왕비는 웨이웡싸라는 왕자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왕위 계승자이길 원했던 몬띠어 왕비는 어느날 워웡과 쏘웡 왕자들이 자신을 성희롱하는 것으로 연출했다. 이를 목격하고 기가 막혔던 쏘리야 왕은 크게 분노하여 두 아들에게 사형을 명했다. 그래서 벙띠어 왕비는 두 왕자에게 반지를 나누어 주고 10년 후에 돌아올 것을 당부하며 탈출시켰다.

 

망명길에 오른 두 왕자는 여러 날 동안 숲 속을 헤매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때 하늘에서 이들을 불쌍히 여긴 인드라 신이 흰 수탉과 검은 수탉으로 화신하여 근처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검은 수탉은 “누구라도 나를 먹으면 7년 후에 왕이 될 거”라고 했고, 이에 질세라 흰 수탉은 “나를 먹으면 7개월 후에 왕이 될 거”라고 했다. 이렇게 맹렬하게 싸우다가 죽어서 굶주린 쏘웡은 흰 수탉을 먹고 워웡은 검은 수탉으로 허기를 모면했다.

 

7개월 후에 꾼톱보레이 왕국의 숲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곳 왕국은 왕이 후사가 없이 승하했기 때문에 왕실의 코끼리를 통해서 하늘이 점지해준 왕을 찾아 다녔다. 쏘웡 왕자는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코끼리 때문에 강제적으로 형과 헤어져야 했고 왕국의 공주와 결혼해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워웡 왕자는 할수없이 혼자 여정을 계속했고, 토라닛 왕이 다스리는 왕국에 이르러서 어느 노파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노파는 워웡이 끼고 있는 반지를 보고 그를 도둑으로 간주해서 토라닛 왕에게 잡아갔다.

“ 워웡과 쏘웡 이야기 ” 를 바탕으로 19 세기에 제작된 삽화(출처: litlover.school.blog)

그렇게 워웡 왕자가 감옥에 갇혀서 절망하고 있을 때 토라닛 왕의 동맹국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나타나서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토라닛 왕은 거인을 무찔러줄 용사를 찾고 있었는데, 워웡이 석방을 조건으로 싸우겠다고 나섰다. 워웡 왕자는 전생에 쌓은 공덕으로 인해서 쉽사리 전세를 역전시켰고 결국은 토라닛 왕으로 위장해서 거인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전생에 부부의 연이 있었던 토라닛 왕의 공주와 결혼은 물론 동맹국까지도 후계자로 지목함에 따라 워웡 왕자는 두 왕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 워웡과 쏘웡 이야기 ” 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출처: tumbral.com)

 

하지만 어머니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던 워웡은 동생과 재회하여 군사를 이끌고 드디어 본국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본국에서는 부왕인 쏘리야가 첫째 아내 벙띠어 왕비를 철창에 가두고 왕위는 몬띠어 왕비의 계략에 따라 웨이웡싸 왕자가 차지했다. 그런데 그때 워웡과 쏘웡의 군대를 옆 나라의 침략으로 알고 싸웠던 웨이웡싸는 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무릎을 꿇은 쏘리야 부왕은 둘의 반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식인 줄 알아보고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했다.

 

 

 

 

최초 작성일: 2021년12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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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칼럼 [캄보디아 더 알아보기]에도 수록된 내용으로서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내용을 참조하실 때 꼭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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