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톡의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한국인 단톡방에서 캄보디아인 남성 가운데 일부가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길게 유지하는 데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 읽었던 고 마광수 작가의 글마다 보였던 긴 손톱 예찬론은 참 방탕해 보였어도 딴 세상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름 멋지다고도 여겼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젊거나 중년 남성들의 손톱은 어쩜 그렇게도 얄궂게 생활 친화적인지 손톱 아래 거무튀튀한 이물질부터 째려보게 된다. 그렇지만 재직 중인 대학기관에서는 극히 일부만 약간 긴 정도에서 발견될 뿐이기에 이제는 손톱을 기르는 캄보디아인 남성도 점점 희귀해지는 추세라 여기는 중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손톱이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춘추시대(BC 770~476년) 유학자 공자의 어록에서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훼손하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상에서도 열 손가락 모두에서 긴 손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처럼 상류층의 남녀, 특히 지식인들은 모두 손톱을 길렀는데, 이는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행동 양식이다. 심지어 길게 자란 손톱에 보석으로 장식한 보호대를 장착함으로써 높은 지위를 과시했다고 하니 "사치와 방탕"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러니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운동(1850-1864)의 수장이었던 홍런간(Hong Rengan; 1822~1864)은 황실의 긴 손톱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며 청나라의 멸망을 주도했다.
캄보디아의 인접국 태국에서도 남성들이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기른다고 한다. 이들은 오른손의 새끼손가락 끝이 약지의 세 번째 마디를 지나면 번영하고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새끼손가락 끝이 약지의 세 번째 마디 아래에 있으면 이를 상쇄하고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손톱을 키워서 세 번째 마디를 지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손금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용되는 개념이라니 행운을 좇아서 살아가는 캄보디아인에게도 통용될 법하다. 즉, 캄보디아인 남성도 약지의 세 번째 마디보다 긴 새끼손가락을 통해서 악령의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행운과 더 나은 번영을 소원할 듯하다.
그 밖에 긴 손톱의 실용적인 용도는 사소한 것부터 직업적인 필요까지 무궁무진할 듯하다. 대개는 귀나 코를 후벼 파서 청소하는 용도를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하다. 그렇지만 컴퓨터나 가전제품 수리공이라면 단단한 물체를 열거나 일시적으로 나사를 조여서 고정하는 용도, 기타 연주자라면 연주용 기구인 피킹을 대신하는 용도, 교도소 수감자라면 법적 구속력을 피하는 무기의 용도, 마약류인 코카인을 퍼서 코로 흡입하는 용도 등을 위해 손톱을 기를 법하다. 물론 이 중에서 코카인은 상당히 비싼 마약류인 바 경제적 수준이 열악한 캄보디아인 남성이 쉽사리 접근하기란 다소 불가능해 보여서 논외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캄보디아에서도 중국 역사적으로 상류층이라면 긴 손톱을 하나 이상 갖는다는 인식에 따라 오늘날 남성들도 부와 우아함을 과시하고자 깔끔하고 개성 있는 스타일로 손톱을 기를 듯하다. 또는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우월한 공동체의 남성들이 깨끗하고 매끈한 손톱을 멋들어지게 유지하면서 직장에서 행정적이거나 학문적인 역할에 관여했다. 이것이 육체노동자들에게는 선망하는 모습으로 각인되어서 해당 관행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블루칼라 노동자의 손가락은 긴 손톱을 제법 고수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운을 기대하는 미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고대나 중세가 아닌 오늘날은 어떤 남성이라도 직업, 성격, 좋아하는 것과 취미에 따라 손톱을 길게 기르는 이유가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손톱이 제멋대로였다면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할 테지만, 어떤 손가락만 유독 손톱을 길게 다듬는다면 짧은 손톱을 유지하려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굳이 관심거리가 되는 듯하다. 높은 지위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든, 행운을 기대하는 심리든, 최대한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가려운 귀를 후벼보려는 의도든 간에 분명한 것은 각자 자신만이 알 뿐이다. 또는 패션에 대한 오마주이자 독창성과 고귀함의 표시로서 손톱을 길게 기를지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최초 작성일: 2022년7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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