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 생략>
ខ្លួនឯងជាប្ររុសឫមួយក៏ស្រី
클루언아잉찌어쁘러루르무이꺼쓰라이
(남자든 여자든)
ក្បត់បងទៅយកគេ ហើយធ្វើចរឹករញ៉េរញ៉ៃ
끄벗벙떠으욕께 하으이트워짜륵르녜르냐이
(애인 배신하면)
បន្សល់ឈ្មោះអាតិត ជាស្រីផិត ហើយក៏ជាស្រីកាកី
번썰츠무어아뜻 찌어쓰라이펏 하으이꺼찌어쓰라이까까이
(뭐라는지 알아? 바로 까까이야!)
<뒷부분 생략>
저는 이 노래에 나오는 '까까이'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한국문학에서 바람피는 여자의 대표는 누구일까요?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복녀',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아내,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의 교씨 부인...등이 생각납니다. <날개>의 아내는 생계형에 가깝고, 복녀는 종국에 탐욕과 집착으로 치달았으며, 교씨 부인은 사악한의 전형으로서 외간 남자와 사통하죠.
캄보디아 여성들은 상당히 제한된 사고를 합니다. 일부종사와 칠거지악이 서슬퍼렇던 근대 한국의 소설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한 제자의 전통 결혼식을 참석했다가 제자 쪽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홀로된 여성분들만 90%가 넘었던 모습을 봤습니다. 모두들 미망인이었고, 자식을 위해서 재혼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여성분에게 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크메르문학 석사를 취득하기 위해서 논문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한국여성노동자단체 소속으로 여성 운동가들과 활동하면서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자로 캄보디아에 왔지만 여기서도 여성의 삶은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모계사회의 전통에 따라 이 사회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캄보디아 사회와 여성의 삶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굳이 한국과 다른 점을 찾자면, 제 생각에 한국 여성보다 캄보디아 여성은 남성에게 훨씬 덜 의존적입니다.
당시에 저는 캄보디아 문학작품 <រឿង កាកី [르엉 까까이]>를 분석하려고 관련된 거의 모든 크메르어 서적을 독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내일모레 결혼을 계획하고 있던 나름 석학인 그녀에게 '까까이'라는 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여자는 아주 나쁜 여자이고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저렇게 매몰차게 대답하는 걸까요? 그 분에게 '까까이'는 그저 절대적으로 '악녀', '부도덕한 여자', 모든 여성들이 경계할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작년 연말, CKCC 다목적홀에서 크메르루즈 때 유실됐던 필름을 복원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캄보디아 올드 필름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그때 <រឿង កាកី [르엉 까까이(까까이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했던 필름도 공개됐는데, 저는 그 소식에 너무나 감격해서 감상하러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영화 속 '까까이'는 아주 적극적으로 온 몸을 던져 외간 남자를 유혹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책에서 본 바로는, '까까이'는 고아입니다. 뒷배가 없는 여성이었죠. 예쁘다는 이유로 늙은 왕에게 점찍혀서 궁궐에서 꽃처럼 안락하게 삶을 삽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과 체스 게임을 하던 젊은 미남자와 눈이 맞았지요. 미남자는 그녀가 잠든 틈을 노려 자신의 처소로 납치합니다. 납치 후에 이래저래 어찌저찌 까까이는 그 남자의 여자가 됩니다.
늙은 왕이 가만 있을 리 없죠. 질투로 이성을 잃습니다. 신하라는 작자도 사실은 까까이에게 흑심을 품었던지라 두 여자 남자가 눈이 맞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자신이 직접 사실 확인을 하고 오겠다고 했죠. 그리고는 그 신하는 미남자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까까이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래저래 어찌저찌 까까이는 신하의 여자도 돼버리죠.
이래저래 어찌저찌는 간단합니다. '남성의 구애와 꼬드김-여성의 반대와 남편이 있는 몸이라는 등의 항변-남성은 끝까지 사랑을 지키겠노라 약속-여성은 아! 어쩌란 말이냐 식의 난감한 제스쳐-남성의 밀어부치기-끝'의 순서지요.
나중에 신하는 궁에 돌아와 왕과 게임 중인 미남자 앞에 나타나서 자랑스레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까까이와 일주일을 어찌저찌 했노라'라고 말이죠. 미남자는 그날로 까까이를 왕궁 마당에 내던지고 가버립니다. 왕은 질투와 분노로 여자를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 밥으로 만들면서 이 이야기는 끝납니다. 여기까지가 캄보디아판 <까까이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고 캄보디아 비평가들의 분석 글은 이렇습니다. 캄보디아 문학의 권위자라는 분은 이미 돌아가신 분인데 '여자가 곱상한 남자의 후리는 말만 믿어서 그렇다' 그리고 '까까이가 천애 고아라서 배운 것 없어 그렇다'라고 썼고, 그 분의 이런 분석이 버젓이 훈센 도서관에 비치돼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의 최고의 문학박사 분은 크메르 남성 우월주의의 전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평함으로써 좀더 솔직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 분은 저에게 "까까이는 잘못이 없다"라고도 직접 말씀하시면서 저를 격려해 주셨죠.
그렇지만 '까까이'가 재조명 받기에는 아직도 한계가 있습니다. 작가가 왕이라는 점과 캄보디아의 미풍을 중시하야 여성의 품행을 제재하려고 법제화까지 시도하는 오늘날의 시대는 까마득해만 보입니다.
그리고 까까이의 이야기는 사실 더 이어집니다. 원작은 인도의 부처 이야기 본생담에서 파생된 태국의 <까까이>입니다. 작가 앙두엉 왕이 왕자 시절 태국에 볼모로 잡혀 있을 당시에 태국은 여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때라서 앙두엉 왕자는 태국의 <까까이>에서 중반부까지의 내용만 싹뚝 잘라내서 여주인공을 징벌하는 내용으로 재창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태국의 왕에게 충성스럽게 바친 거였죠. 더욱이 앙두엉 왕자는 당시의 캄보디아 왕실의 왕권 다툼에서 앙메이 공주에게 밀렸기 때문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저주와 여성 혐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전반의 내용을 정리해서 논문으로 쓰고 싶었지만 저의 지도교수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태국과 관련된 비교문학적 접근이나 내용의 차이를 언급하지 말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캄보디아의 전반적인 상황에서 주변국, 특히 베트남뿐만 아니라 태국에 대한 언급도 무척 조심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앙두엉 왕의 <까까이 이야기> 창작 배경을 까놓고 분석한 글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발표된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 내에서 유통되는 분석자료에서 태국의 <까까이>와 비교해서는 캄보디아 작품의 내용이 다르다고만 강조할 뿐, 여성 억압에 대한 솔직한 언급이나 이 작품을 둘러싼 앙두엉 작가에 대한 분석은 아예 보지를 못했습니다.
캄보디아판 <까까이 이야기>의 뒤를 이어 태국의 이야기에서 까까이는 바다에서 상선에 구출되고 해적에게 피납됐다가 착한 홀아비 왕에게 구출돼서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당초 까까이의 남편이었던 왕은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죽고 밑에 있던 흑심있던 신하가 왕이 됩니다. 신하였던 왕은 까까이를 못 잊어서 잘 살고 있던 까까이의 나라를 정벌하고 그녀를 데리고 와서는 자신의 왕비로 삼으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참... 말이 길어졌습니다. 요점만 보시려면 아래의 뉴스브리핑 캄보디아에 실린 글을 보시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 페이지는 '까까이'가 나오는 노래 가사의 음독과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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