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메르어 신문에서 난데없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푸른색의 도라에몽 인형이 든 가마 행렬을 다룬 기사를 봤다. 신박하긴 했지만 5월 2일자 태국 뉴스여서 넘겼는데 바로 다음날 캄보디아 뉴스에서도 북부 지역인 반띠민쩨이주에서 살아있는 고양이 4~5마리를 가둔 케이지를 가마처럼 잡고서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기사 내용을 보니 놀랍게도 비를 기원하는 해낭매오(Hae Nang Maew)라는 기우제 행사였다. 첨부된 영상은 한 시민이 고양이가 갇힌 케이지를 향해 물 한 동이를 가감 없이 퍼붓고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태국과 캄보디아의 일부 지역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비를 부르는 힘이 있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다.
고양이 기우제를 뜻하는 “해낭매오”는 태국어이고 캄보디아어로는 “삐티하에니엉먜오(ពិធីហែនាងម៉ែវ)”인데 ‘삐티’는 의식, ‘하에’는 퍼레이드, ‘니엉’은 암컷, ‘먜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이다. 이 의식은 5월부터 8월까지 가뭄이 드는 기간에 북부 크메르인(Northern Khmer people; 쭌찌엇 크마에 캉쯩)이 분포하는 지역인 캄보디아와 태국 중부 및 북동부(Isan; 이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속적 기우제 의식이다. 일반적으로는 왕실 어경절(Royal Ploughing Day) 행사 이후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 기우제를 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올해 어경절 행사가 5월 26일인데 4월부터 폭염과 가뭄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과 농작물의 피해가 극심해지면서 5월초부터 이렇게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고양이 기우제는 먼저 암컷 고양이를 뚜껑이 덮인 대나무 광주리나 등나무 케이지 또는 새장에 담아 가둔다. 민속학자에 따르면 암컷을 쓰는 이유는 남신이 정액을 비로 내려서 대지의 여신에게 보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색은 구름을 닮은 비취색이나 검은색이 선호되는데, 이러한 색은 ‘비’를 불러온다고 믿었다. 케이지는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조각된 장대에 매달아서 여성처럼 분칠한 두 명의 가마꾼이 앞뒤를 어깨에 메고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집집마다 들리면서 의식을 시작한다. 장대뿐만이 아니라 남녀의 외설적인 형상의 물건은 행렬에서 구성지게 노래하는 할머니들의 손아귀에도 쥐여 있다. 연희단은 북, 징, 심벌즈, 클라베스로 구성된 민속 음악 밴드이다.
노래는 성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대체로 “비야, 비야, 쏟아져라. 올해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부들의 벼가 죽을 것이다.”라는 가사를 골자로 한다. 연희단이 각 집에 도착하면 집주인은 바구니에 갇힌 고양이에게 물을 흠뻑 뿌려서 ‘질색팔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산’지역 사람들이 전하는 전설 속 ‘매오(Maew)’라는 상상의 동물은 용모가 고양이 같은데 하는 짓은 ‘개’와 같았다고 한다. 즉, 비가 오면 좋아서 뛰어나가서 빗속에서 춤을 추고 논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물은 원시 농경 사회에서 비를 부르는 풍요의 상징이었고 ‘기우제’에서도 지금과 같은 행렬에 동원했다.
그렇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날은 고양이가 화도 나고 고통스러워서 ‘으르렁’하는 절규가 비를 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대신하게 됐다. 이렇게 하고도 일주일 이내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반복한다고 하니 동물 학대 논란을 피할 수 없기는 하다. 그래서 올해 ‘고양이 기우제’에서는 신박하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도라에몽 인형이 들려서 민속적인 전통을 살리면서 세간의 시선까지 사로잡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물론 도라에몽은 수컷 고양이라는 점에서 의식의 정통성이 흐려졌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이외에 ‘헬로키티’ 캐릭터 인형이나 ‘마네키네코’라는 일본의 손 흔드는 고양이도 광주리에 실려서 기우제 의식에 사용된 기사도 있었다.
최초 작성일: 2024년5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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