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 6~7시간을 달리면 숲과 폭포, 자연으로 둘러싸인 캄보디아 북동부의 고원지대인 몬돌끼리주에 도착할 수 있다. 몬돌끼리주의 서쪽은 끄라쩨, 북서쪽은 스떵뜨렝, 북쪽은 라따나끼리, 동쪽과 남쪽은 베트남과 접한다. 국토 면적은 전국에서 가장 넓지만, 인구는 가장 적은 지방이다. 2019년 인구조사에서 몬돌끼리 인구의 80%는 10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하며, 그 중 대다수가 부농족이고, 나머지 20%는 크메르인, 중국인, 참족이다.
부농(Bunong)족은 프농(Phnong), 뿌농(Punong) 또는 쁘농(Pnong)으로도 불린다. 캄보디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토착 고원 민족으로, 주로 몬돌끼리 지방에 산다. 바나릭 오스트로아시아어에 속하는 ‘부농어’를 고유 언어로 사용한다. 부농족의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주변 숲, 산, 강의 정령과 조상을 숭배한다. 이러한 관행은 크메르 불교와 결합해서 소승 불교화하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초 베트남 전쟁 중 난민 캠프로 망명한 경우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수년간 종교 단체의 개발 지원과 선교로도 기독교가 전파됐다.
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당시 시아누크 왕자는 부농족을 포함한 고지대 사람들을 “고산족(크메르르)”이라 칭했다. 캄푸치아 인민공화국(1979-89) 때는 “소수민족(쭌찌엇피억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부농족(쭌찌엇뿌넝)”으로 불렸다. 오늘날 부농족을 지칭하는 일반 용어는 “원주민 소수민족(쭌찌엇다음피억떽)”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특히 “원주민 공동체”로서의 집합적 토지 소유권에 대한 특별 권리를 포함한다.
부농족은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이며 구조화되지 않고 종종 비밀스러운 전통 의학을 시행한다. 이는 원천적으로 삼림 환경의 생물 다양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1970년대 내전 때문에 해안가로 강제이주했을 때는 문화와 전통 의학 관행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원래의 터전으로 복귀한 1980년대와 90년대는 고향에서 자생하는 식물지식과 사용법이 상당 부분 잊혀졌다고 한다. 그래도 2011년 연구에서 95%의 부농족이 약용 식물 사용 관행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들의 전통 의학이 캄보디아 삼림을 보존하는 구실일 수도 있겠다.
캄보디아는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 토지 양허(ELC) 제도를 통해 국가가 토지를 장기임대하여 투자자를 유치했다. 이로 인해 소유권이 없이 조상 대대로 자연에 살던 토착민들은 외지인의 불도저가 숲을 휘젓고 가옥을 망가뜨리면 그제야 경각심을 갖고 대응한 듯하다. 일례로 2008년 유럽-캄보디아 합작투자회사(Socfin-KCD)는 몬돌끼리주의 한 지역을 70년 동안 임대해서 고무 농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부농족은 관리로부터 개발 소식을 들었을 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거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거기다가 회사는 부농족의 존재를 몰랐던지 어떠한 보상대책도 없었다. 이에 부농족은 평화적 시위로 해결이 안 되자 종국에는 폭도들로 돌변해서 회사에 쳐들어가 장비를 부수고 차량을 불태웠다.
당시에 부농족은 신성한 숲을 매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서 공식적인 소유권이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소유권 기록은 1975-79년 정권기에 크메르루주가 모조리 파괴했다. 이에 분쟁 당사자였던 부농족은 토착민으로서 공동 토지 소유권을 설정하기 시작했으며 캄보디아의 2001년 토지법에 따라 전통적 토지를 회복할 권리도 있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법은 회사가 법률을 위반하고 부농족에게 "사전 고지 및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즉, ELC제도로 인해 “토착민의 토지를 몰수한 불행한 결과”가 발생했었다.
요즘도 지방 당국이 부농족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고 회사에 땅을 넘겨서 항의하는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때의 부농족은 토지 문제를 항의해도 당국과 정부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또 이들은 일반인조차 부농족을 어리석거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긴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실제로 대다수의 무신경한 크메르인은 "부농"이라는 단어를 모욕적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일례로 최근 유명인이 페이스북 영상에서 부농족을 무지랭이로 폄하하자 발끈한 부농족이 단체로 소송을 제기하고 공개 사과하도록 했다.
최초 작성일: 2022년11월10일
1차 수정: 2023년4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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