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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국가&정치

캄보디아 정당: 촛불당의 부활과 켐쏘카의 결별 선언

by 까페브라운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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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지방선거를 위해서 촛불당 지지자들의 오토바이 퍼레이드(출처: thediplomat.com)

지난 65일 치러진 면/동 단위 기초의회 구성을 위한 지방선거의 예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의석 11,622석 가운데 캄보디아국민당(CPP) 9,338석, 촛불당(CLP) 2,180석, 왕당파 푼신펙당 19석을 차지하고 나머지 85석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6개 정당이 나눠 가졌다. 촛불당은 2018년에 삼랑시당(SRP)에서 개명했는데, 망명 중인 원로 정치인 삼랑시(Sam Rainsy)의 후광을 입었기에 총선을 1년 앞둔 이번 선거에서 캄보디아 내 그의 입김이 여전하다고 방증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6월 15일 켐쏘카 전 캄보디아구국당(CNRP) 총재는 법원 청문회에서 삼랑시와의 정치적 동맹 관계가 오래전에 파기됐음을 재차 강조했다. 알다시피 켐쏘카는 2012년에 자신의 정당인 인권당(HRP)과 삼랑시당의 통합으로 결성한 CNRP 부총재직을 수행하다가 2015년 11월부터 입국을 포기한 삼랑시 총재를 대신했다. 그러던 중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캄보디아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이 자신을 돕는다고 발언함에 따라 2017년 9월 ‘외세를 끌어들인 반역’ 혐의로 기소되고 그해 11월 CNRP도 해산됐다.

 

훈센을 비판한 라디오 비평가 켐쏘카가 2006년 1월 17일 석방이후 프놈펜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쁘레이싸 감옥 인근의 사원에서 그의 부인의 옆에서 손을 높이 들고 있음(출처: voacambodia.com)

켐쏘카는 이미 202111월에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서 자신과 삼랑시가 더는 하나가 아니라고 전한 바 있다. 당시에 그는 삼랑시가 촛불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데 대해서 CNRP 결성 당시의 통합의 원칙과 정신을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삼랑시에게 켐쏘카의 이름과 이미지를 동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서 삼랑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켐쏘카가 “훈센 총리의 인질”로서 거짓을 말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1997년 3월 크메르민족당 시위 과정에서 수류탄 공격을 받아 쓰러진 삼랑시. CPP 측이 1998년 총선을 앞두고 푼신펙당과 크메르민족당의 연대를 경계하여 응징을 가한 테러로 16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삼랑시는 경호원이 몸으로 막으면서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오늘날까지도 국외 체류를 거듭하며 운신의 폭을 제한할 만큼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출처: sebastianstrangio.com)

삼랑시는 망명자 신분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국내외에서 지지 기반이 견고하다. 태생부터 명문귀족가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왕실 고위 정치인, 아버지는 시하누크 정부에서 장관직과 부총리, 영국 대사를 역임했다. 프랑스에서 금융회사의 투자매니저 겸 이사로 재직하던 삼랑시는 캄보디아로 와서 1993년부터 푼신펙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다가 1994년에 촛불당의 전신인 크메르민족당을 창당했다. 1998년에 삼랑시당으로 개명하고 그해 총선에서 국회의석 15석을 차지했다. 이어 200324, 200826, 그리고 CNRP로 통합된 이후인 201355석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반면에 켐쏘카는 내세울 배경 없이 오로지 자신의 투지와 열정, 행운이 함께한 덕분에 지금의 명망을 갖추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크메르루즈 정권기에 농사를 짓다가 친베트남 정권기(1979-1989)에 베트남군에 맞섰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1986년 체코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정부 요직에서 뜻을 펼치려던 포부는 접어야 했다. 자연스레 주변인으로서 약자들의 인권에 주목하면서 1993년에 불교자유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12월에는 훈센 총리를 공개적으로 저격했다가 구속되면서 정치적 인기와 역량이 높아졌다. 여세를 몰아서 2007년에 인권당을 창당하고 2008년 총선에서 국회의석 3석을 차지했다.

 

2014년 국회의원들 앞에서 손을 맞잡은 삼랑시와 켐쏘카(출처: rfa.org)

CNRP의 결성만큼은 결이 다른 두 사람이 각개전투로는 가질 수 없는 지지세력을 끌어안은 대통합을 이루며 성공적이었다. 켐쏘카는 풀뿌리 수준에서 지방의 민심을 대표했고, 삼랑시는 프놈펜과 서방의 이민자 사회에서 자금력과 인기를 끌어왔다. 비록 삼랑시는 켐쏘카의 결별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관계라고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길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범하는 단계에 있는 듯하다. 지방선거를 통해서 촛불당이 제1 야당으로 심지를 밝히기 시작했다면, 이에 못지않은 움직임을 켐쏘카도 보여야 할 것이다. 흩어졌다면 나중에 결집할 명분을 예비해야 할테니 말이다.

 

삼랑시는 2008년 명예훼손 혐의를 구형받는 바람에 프랑스로 도망쳤다가, 2013년 미국의 요청으로 훈센 총리가 현 국왕에게 사면을 청해서 전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입국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최근 5월에 훈센 총리가 ASEAN 의장국으로서 미국을 입국하고 미국 경제계 지도자들과 만나 경제 협력에 대해 논의하는 일정을 가졌다. 미국이나 서방 세력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캄보디아에 실익을 주느냐에 따라 언젠가는 국왕의 사면권 행사를 통해서 삼랑시가 캄보디아에 또다시 입국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2019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는 삼랑시(출처: rfa.org)

 

 

 

최초 작성일: 2022년6월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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