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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해 칼럼/문학&예술

캄보디아 문학: 스와이리엥주 스와이앙 사원 이야기

by 까페브라운 202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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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이리엥주 스와이앙면에는 1번 국도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침수되지 않은 언덕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스와이앙언덕이라고 불렀고, 면 단위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언덕에는 한때 성벽과 함께 길이 83m, 너비 46m의 석조 사원이 있었다. 불교 사원과 유사한 이 사원은 벽돌과 단단한 라테라이트에 오래된 스타일과 형상이 조각되어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은 무너져 잔해와 구조물 일부만 남았고, 사원 자리의 중앙에는 바얀 나무(Banyan Tree)가 자라고 있다. 폐허가 된 사원 앞에는 링가(시바 신의 링가) 조각상이 있다.

“왓스와이앙” 사원의 링가 조각상(출처: facebook/Short Narrative)

 

옛날 옛적에 캄보디아의 수도가 롱바엑(Longvek; 1529~1594) 지역에 있을 때, 나라에서는 시암(Siam; 오늘날 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스와이앙이라고 불리기 전의 그 언덕에 집을 짓고 살던 썸럿이라는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의 부름에 따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무기와 갑옷을 챙겨서 롱바엑 수도 사령관을 만나 군 복무에 자원했다. 그는 지휘관으로 발탁되어 바탐방주로 진군하여 최전선에서 격렬하고 용감하게 싸워준 결과 시암 군대는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퇴각해야 했다.

시암(Siam; 오늘날 ‘태국’)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썸럿”(출처: 크메르지역전설 6집 삽화)

 

이렇게 썸럿이 지휘하는 군대 덕분에 시암 군대는 항복하고 완전히 복종했으며 더이상 캄보디아 영토를 감히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평화를 누렸다. 그는 군대를 수도로 데려가서 왕에게 시암 군대와 싸워 승리했음을 보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재가받았다. 스와이리엥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프놈돈뻰(Phnom Daun Penh; 현재의 왓프놈)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후에 고향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귀향길 중간에 이르러서 가방을 풀었는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앙코르(Angkor; ‘수도를 의미)프놈돈뻰에서 쉴 때 정신없어서 실수로 누군가와 가방이 바뀐 것이었다.

“썸럿”이 수도에서 가져온 망고 씨앗으로 심은 망고 나무(출처: 크메르지역전설 6집 삽화)

 

가방에는 옷감 한 마(Somphot; 1~2m의 천)와 익은 망고 두 개만 들어 있었다. “썸럿은 서둘러서 길을 떠났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의 아내는 가방에서 썩은 망고 씨앗을 꺼내 집 울타리를 따라 심었다. 묘목이 자라서 가지가 나고 꽃이 피어서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 망고 나무는 앙코르 지역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스와이 앙코르라고 불렸으며, ‘수도의 망고라는 의미인 셈이다. 하지만 나중에 앙코르으로 줄여서 불리면서 오늘날의 스와이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망고 나무를 베려는 주지 스님과 승려들(출처: 크메르지역전설 6집 삽화)

 

나중에, “썸럿부부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결혼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마을에 더이상 썸럿의 자손들도 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살았던 언덕에는 마을 사람들이 왓스와이앙이라는 사원을 짓고 승려들이 거주했다. 당시 사원에서는 망고 나무에 사는 새들의 배설물이 광장을 더럽혀서 골치였던 데다가 사원 자체적으로는 제단을 지을 목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주지 스님은 스와이앙망고 나무를 베어서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신비로운 망고나무는 쉽게 잘리지 않았고 일부 잘려나간 부분에서는 다음날 나무와 껍질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어 있었다.

결국 베였지만 죽지 않는 망고 나무(출처: 크메르지역전설 6집 삽화)

 

무심한 주지 스님은 계속해서 나무를 베어내도록 주문했다. 승려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망코나무를 겨우 절반만 벨 수 있었고, 다음날이면 나무는 어김없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어 있었다. 이에 주지 스님은 모든 승려들에게 도끼를 쥐게 해서 밤이 되기 전에 나무 전체를 베게 했다. 나무는 결국 땅에 쓰러졌는데, 베어진 후에도 잎이 시들지 않았고, 가지는 계속 자라서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었다. 밤이 되자 크메르 전통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주지 스님은 광증에 걸려 정신이 나가고 미쳐버렸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사건 때문에 승려들은 왓스와이앙이라는 사원을 떠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1km 떨어진 곳에 왓스와이빠엠이라는 사원을 새로 세웠다. 결과적으로 왓스와이앙은 망고나무가 계속 자랐고 그 밖의 잡목들도 무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는 달리 기실 이 사원은 당초에 시바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링가가 세워진 이후에 불교의 전래에 따라 불교 사원으로 전환된 것이다. 따라서 (Ang)”은 이야기에서처럼 앙코르(Angkor)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브라만 수행자의 거처(shrine)를 의미한다.

 

 

최초 작성일: 2025년03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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