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캄보디아왕국의 프놈덩라엑 왕궁에는 바영(Bayong) 왕과 썩끄러옵(Sak Kraob; 향기로운 머리카락) 왕비가 살았다. 왕비는 여신처럼 아름다웠고 머리카락의 향기가 사방 16㎞까지 뻗쳤다. 이를 들은 시암 왕국은 국가적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썩끄러옵 왕비의 납치를 계획했다. 이를 알게 된 바영 왕은 아내와 궁녀들 및 모든 군사와 함께 황급히 배에 올랐다. 그리고는 신께 기도하기를 뱃길의 순조로움과 시암(현재의 태국) 군사로부터 안전하고 좋은 정착지로 이끌어 준다면 자신의 머리를 깎아서 머리카락을 제물로 바치겠노라고 맹세했다.
왕은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항해했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배가 회전하고 방향타가 부러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유래에 따라 ‘품박쩡꼿(방향타가 부러진 마을)’이라 불렀다. 이처럼 썩끄러옵 왕비는 정착할 곳을 못 찾고 계속 표류하는 상황이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촛불을 켜고 모든 신에게 “시암 군대가 풍랑을 만나 실패하기”를 기도했는데, 이곳을 ‘품언롱띠언(초를 꽂은 마을)’이라 불렀다. 그러자 이들을 쫓던 시암 왕의 배가 방향이 서쪽으로 틀어졌고, 풍랑에 난파되어 군사들도 모두 사망했다. 이곳을 ‘품싸엔롱(물에 빠진 마을)’이라 했다.
한편 바영 왕의 배는 동쪽으로 항해 후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섬과 산이 많은 곳에 정박했다. 정착하기 좋다고 판단한 왕은 왕비와 궁녀들을 내리게 하고 배에서 물품을 모두 꺼냈다. 그때 밤하늘에서 번개가 바영 왕의 배를 쳐서 침몰시켰는데, 이곳을 ‘프놈론떼아(번개 맞은 언덕)’라 했다. 그리고 바영 왕은 신께 맹세한 대로 머리카락을 깎았는데, 그때부터 ‘까오(민머리)’가 붙어서 바영까오 왕으로 불렸다. 그가 거처를 마련한 언덕은 ‘프놈바영까오’가 되었다. 이후 부부는 평화롭게 살면서 왕자를 낳았는데, 그는 팔이 좀 짧은 편이어서 ‘다이클라이(짧은 팔)’ 왕자로 불렸다.
한편, 시암 왕은 계책이 뛰어난 군사들을 다시 선발해서 남쪽으로 배를 띄웠다. 썩끄러옵 왕비가 사는 곳에 도착한 시암 군은 배부터 뭍까지 나무다리를 건설한 후에 매일 밤 선상 연극을 공연했다. 공연은 오랫동안 볼거리도 없이 숨어 살던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썩끄러옵 왕비도 공연을 보고 싶어서 바영 왕에게 고했는데 그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결국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는 궁녀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이에 시암군은 특별히 더 감동적인 공연으로 그녀를 매료시켰고 배를 몰아서 시암 왕국으로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10여 년이 흘러서 다이클라이 왕자는 더이상 팔도 짧지 않고 훌륭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부왕에게 유능한 군사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오겠다고 하고는 길을 떠났다. 이어 시암 왕국에 도달하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그는 홀로 뭍으로 떠나면서도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라서 서로를 못 알아볼 것이 걱정되긴 했다. 그러다 어느 높은 성에서 남쪽을 응시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자신의 어머니인 줄 모른 채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도 아들인 줄 모른 채 구애를 수락하고는 그날 밤에 왕자의 배로 탈출했다. 군사들과 수행원들을 알아본 썩끄러옵 왕비는 그제야 자신과 동침한 사람이 아들임을 알게 됐다.
모자 상봉을 감격적으로 한 뒤에 왕비는 어머니로서 아들의 실수를 용서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에게 저지른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충격과 자책감이 계속되었다. 상황을 알게 된 바영 왕은 서로를 몰라봐서 생긴 실수임을 이해하기에 이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아들의 실수가 국가에 초래할 위협을 판단해야 했기에 학자와 점성술사들을 불러서 ‘처벌’이 필요한지를 확인했다. 그들은 다이클라이 왕자가 “연못 1001개를 파야 한다고 선고했다. 모든 연못이 완성된 날 왕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서 연못이 사용되도록 하겠으며, 연못이 마르고 흙이 메꾸어져서 다시 땅이 되는 날에 비로소 자신의 죄가 사하기를 기도했다.
최초 작성일: 2024년09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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