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반띠츠마 도시는 ‘유어께(Yuoske)’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자비로웠던 그는 주변 왕국들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삶은 평화로웠다. 이와 달리 뿌라쌋뿌러으 왕궁의 ‘훌루(Hulu)’ 왕은 반띠츠마 도시를 빼앗으려 했다. 이에 따라 유어께 왕은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힘들게 하느니 왕위를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서 반띠츠마 도시를 다스리게 됐지만 훌루 왕은 나중에 유어께 왕이 다시 탈환할 것으로 의심했다. 그는 유어께 왕이 침공을 꾀한다는 거짓 뉴스를 퍼트리고 일가족에 대해 현상금을 걸고 잡아들이도록 했다.
이때 덩라엑(Dangrek) 산에서 명상 중이던 유어께 왕은 산짐승 사냥꾼들에게 발견이 돼서 그대로 훌루 왕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남편 소식을 들은 ‘보뚬(Botum)’ 왕비는 뿌라쌋따모안 왕궁에서 홀로 ‘꼬마(Kumar)’ 왕자를 키웠다. 아들이 12세가 되었을 때 부왕에 관해서 묻자 왕비는 그간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왕자는 비분강개하여 언제라도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아버지를 찾아 떠날까 봐서 걱정했지만 계속 조르는 아들을 더이상 만류할 수도 없었다.
꼬마 왕자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아버지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마침 반띠츠마 도시의 광장에 이르렀을 때 죄수 호송대가 유어께 왕을 처단하려고 했다. 아버지임을 확신한 꼬마 왕자는 훌루 왕의 앞에서 “이 죄수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제 아버지는 결백합니다. 그러니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제발 풀어주세요. 왕께서 죽이고 싶다면 아버지 대신에 저를 죽이십시오.”라고 외쳤다. 훌루 왕은 꼬마 왕자의 용기와 기백에 감복하면서도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 주지.”라면서 누구라도 왕에게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집행관에게 즉결 처형을 지시했다. 이를 본 대중은 훌루 왕이 두려웠지만 용감한 소년에 대해 경외심을 가졌다.
놀랍게도 아버지를 향한 꼬마 왕자의 태도는 사형 집행관의 검이 모두 구부러지는 기적을 낳았다. 아무리 검을 바꾸어도 소년의 살점 하나 건드리지 못한 훌루 왕은 활활 타는 불길 속에 꼬마 왕자를 집어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뜨거운 불은 아주 차가워져서 소년은 전혀 데이거나 다치지 않았다. 불길에서 나온 꼬마 왕자는 훌루 왕과 대중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왕은 이번에 사나운 코끼리 무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놀랍게도 모든 코끼리는 꼬마 왕자와의 두 걸음 거리에서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뿐만 아니라 선두의 가장 나이 많은 코끼리는 꼬마 왕자를 자신의 머리 위로 부드럽게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 시민들은 모두 놀라움에 빠져서 꼬마 왕자를 둘러싸고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힘을 본 훌루 왕은 소란스러운 군중 속에서 몸을 피해 사라졌다. 상황이 정리됐을 때는 훌루 왕을 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훌루 왕이 꼬마 왕자를 두려워해서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비로소 꼬마 왕자는 유어께 왕과 함께 어머니가 있는 덩라엑 산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심한 고문과 옥살이 영향으로 유어께 왕은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반띠츠마 왕궁에서는 모든 귀족과 관리들이 꼬마 왕자가 입궁하도록 행렬을 조직했는데, 이로써 보뚬 왕비는 아들과 영원히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반띠츠마 사원은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당시 앙코르 제국의 가장 큰 사원 단지 중 하나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라 있다. 자야바르만 7세 왕의 통치 기간에 건립된 이 사원은 오늘날 씨엠립 앙코르 사원 단지의 바이욘 사원과 따프롬 사원에서 볼 수 있듯이 크메르 제국의 황금기였던 시대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다. 자야바르만 7세 왕이 1177년과 1181년 사이에 있었던 이웃 왕국인 참파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아들 스린드라쿠마라 왕자와 네 명의 전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최초 작성일: 2024년09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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