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가사의로 칭송받는 앙코르와트는 들어 봤어도 캄보디아라는 국가 이름은 생소했던 시절 캄보디아에 봉사단원으로 파견된 결혼 적령기의 여성 단원들이 모일 때면 국왕이 미혼이라서 자신들 중에 누구라도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면 세기의 결혼식도 가능할 것이라 떠들곤 했다.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이랄까? "왕과 나"라는 영화 속의 율브린너를 딱 떠올리게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고는 귀공자 느낌을 물씬 풍기던 캄보디아 국왕 사진에 푹 빠져 쳐다보노라면 어느새 우아한 왈츠 선율에 몸을 싣고 있는 상상을 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간 매스컴을 통해 훈센 총리는 너무 자주 이슈화된 반면 캄보디아 왕국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진짜 주인 노로돔 시하모니(1953~) 국왕에 대한 정보는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 같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왔던 그가 어떻게 해서 캄보디아 왕국의 왕실을 수호하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일까? 사뭇 날카로운 눈매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언론은 그를 곱고 단정하며 눈을 반쯤 뜬 채 합장하는 모습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국왕은 캄보디아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여망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은 1993년부터 2004년까지 UNESCO 캄보디아 대사를 역임했다. 그 밖에는 캄보디아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배경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그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캄보디아 국민들을 연민하는 마음과 장남으로서 홀로 남은 모친을 돌보려는 효심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2004년 10월, 훈센 총리가 왕족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자 아버지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은 왕위를 내려놓는다. 당시 왕위 서열 9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왕선출위원회는 체코 유학파 무용수이자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지금의 왕을 선출해 버린다. 이를 수차례 고사하고 부왕을 설득했으나 결국은 받아들였던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 왕위는 세습제가 아니다. 법에 따른 선출 절차에 따라 왕족 중에서 누구라도 국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 국왕이 미혼인 것은 왕국의 미래하고는 관계가 없다. 또한 과거 왕정일치 사회라면 국왕이 독재를 하거나 왕족들 간의 왕권다툼을 벌이는 일도 있겠지만 오늘날은 왕정분리 사회로서 입헌군주국답게 국왕이라도 모든 의사결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만큼 정치적인 동지가 없는 현재의 국왕이 무슨 힘이 있어서 의결권을 행사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권자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에서 국왕의 존재는 국가 안정의 열쇠라고까지 언급했던 만큼 군주제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캄보디아 사회를 통합하는 구심점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인기가 높고 때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국민들에게 현 국왕은 부왕이었던 노로돔 시하누크 선왕에 대한 향수로 작용함과 동시에 아픈 역사를 함께 견디면서 전제왕권 시절의 ‘위대함’ 보다는 아픈 손가락 혹은 ‘지못미’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2013년 2월, 좀처럼 대중 앞에 서지 않는다는 시하모니 국왕은 서거하신 시하누크 부왕의 120일간의 애도기간을 마치고 불교식으로 화장하는 장례 기간 동안 특별 사면자 400여명을 앞에 두고 훈센 총리와 정부에 감사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들 앞에서 훈센 총리를 두둔하는 연설을 하는 것은 그만큼 몸소 살았던 과거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평화가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전하고자 함일 것이다.
최초 작성일: 2019년4월19일
1차 수정: 2020년4월30일
2차 수정: 2020년10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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