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로운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청산하고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서 교육해야 한다. 캄보디아에서도 뚜어슬렝 박물관(전 S-21교도소)이나 킬링필드 현장이 현재까지도 큰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지만 철거되거나 개발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이다. 또한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세워진 ECCC가 전국적으로 증인과 피해자를 수소문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전범들을 법정에 세우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살해된 희생자들을 추모한지도 올해로 40회가 됐다.
캄보디아법원특별법정(ECCC)은 크메르루즈 전범을 재판하기 위해서 UN크메르루즈재판원조(UNAKRT)에서 기술적인 지원과 국제적인 원조를 받는 캄보디아의 특수재판소이다. ECCC는 캄보디아법과 국제법에 의거해서 캄보디아인과 외국인 판사, 검사 및 피고측 변호사가 함께 참여하며, 재판대상은 민주깜뿌찌아 정부하의 1975년4월17일-1979년1월6일에 저질러진 범죄 혐의가 있는 크메르루즈 고위급 지도자와 최고 책임자들이다. 이들이 집권한 3년8개월20일 동안 최소 170만명의 캄보디아인이 사형, 고문, 강제노역과 굶주림 등으로 사망했다.
2019년7월자 ‘ECCC 한눈에 보기’를 참조하여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관련 과거사청산의 과정을 살펴 보고자 한다. 1979년1월7일에 베트남 군대에 의해서 크메르루즈 정권이 전복되고나서 그해 8월15일에 인민혁명재판소는 궐석재판으로 뽈뽓(Pol Pot)과 이엥싸리(Ieng Sary)를 대량학살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서 ECCC 전심재판부는 1979년의 재판을 공평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1997년6월21일에 정부(RGC)는 UN에 크메르루즈의 고위 지도자를 기소할 재판소를 세우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1999년3월15일에 UN전문가그룹은 국내의 캄보디아 법원체계와 별도로 외부에 국제재판소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제안을 거절함에 따라 오랜 기간의 협상이 뒤따라서 2003년6월6일에 마침내 협정이 체결됐다. 2004년10월27일에 UN과의 합의사항을 반영하여 개정한 ECCC법(최초 발의일: 2001년8월10일)이 정부에 의해서 발효됐다. 이 법은 ECCC를 관장하는 캄보디아 국내법으로서 특별법정의 토대가 됐다. 2005년4월29일부터 UN과 정부간 협정의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정부는 당시 육군본부를 ECCC의 부지로 제공했다.
2006년7월3일에 국내 및 국제 판사와 공동 검찰이 선임되었다. 2007년6월12일에 ECCC는 내부규칙을 정립하고 법정의 운영을 개시했으며, 현재까지 총4건의 사건을 심의하는 동안 총633일의 청문회를 개최했다. ECCC 재판의 핵심이 되는 증인 및 청구인 총334명의 출석은 증인 및 전문가 지원부서(WESU)에서 전담했다. ECCC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된 크메르루즈 지도부는 총9명으로서 집단학살죄, 반인륜범죄, 1949년 제네바협약의 중대한 위반행위(전쟁범죄), 캄보디아 국내법상 살인, 고문 등 전쟁과 대량학살 혐의가 있다.
재판의 과정은 1단계: 검사의 예비 제소, 2단계: 조사판사의 조사, 3단계: 검사의 최종 제소(재판 청구 또는 기각), 4단계: 조사판사의 결정문(재판 회부 또는 기각), 5단계: 전심재판부에 항소, 6단계: 1심재판(청문회), 7단계 판결, 8단계: 최종심재판부에 항소, 9단계: 항소심 판결의 순서로 진행된다. 전체 9단계를 거쳐서 종결된 건은 사건번호001과 002/01이다. 최종심재판부는 사건번호001에 대해서 2012년2월3일에 종신형을 선고했고, 002/01에 대해서 2016년11월23일 1심판결을 확정했다.
사건번호004/01은 5단계에서 전심재판소 판사들의 불일치 결정으로 종결됨에 따라 공동 조사판사의 기각 결정이 유효하게 됐다. 사건번호002/02는 검찰과 피고인 둘다 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기한 상태로 8단계에서 멈췄다. 사건번호003 및 004/02는 현재 5단계로서 공동 조사판사의 종결명령을 항소한 데 대해서 전심재판부의 결정은 각각 2019년말과 2020년초에 나올 예정이다. 사건번호004는 현재 4단계로서 공동 조사판사는 2019년6월28일에 종결명령을 내렸고 이에 대해서 당사자의 항소를 남겨두고 있다.
최초 작성일: 2019년12월16일
1차 수정: 2020년4월30일
2차 수정: 2020년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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