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러혹’을 주제삼아 캄보디아에서 먹었던 여러 가지 음식을 떠올려 보려 한다. 대표적으로 ‘아먹(Amok; 생선찜)’, 모둠야채와 소고기구이 등에 곁들여지는 다양한 ‘뜩끄릉(생선젓갈 양념장)’, 머쭈(덜익은 생과일)를 찍어먹는 ‘뜩쯔럴루억(소스)’, 각종 ‘썸러(국물 요리)’가 생각난다. 대개는 외국인이라도 성공적으로 입맛에 맞다고 추천되는 음식이라서 혹시나 현지인 식당에서 주문하기 막막할 경우를 대비해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두는 메뉴들이다.
흔히 ‘뿌러혹’이라고 하면 현지인들조차 외국인에게 선뜻 내놓기 곤란한 음식으로 여기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직접적으로는 식탁의 한 음식을 가리키며 뿌러혹이 첨가됐으니 먹을 때 주의하라는 당부를 듣기도 한다. 다양한 소개 자료는 뿌러혹이 입맛을 떨어뜨리는 ‘지독한 냄새’가 있다고 기술하고, 외국인 대상의 전통 요리 교실에서는 뿌러혹을 첨가하지 않고 요리를 개발한다고 선전한다. 그렇지만 한국인에게는 ‘젓갈’과 비슷한 인상을 줘서 그렇게 별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뿌러혹은 똔레삽과 메콩강에서 서식하는 ‘리엘’ 생선을 건기의 정점인 12월에서 1월 사이에 대량으로 낚아서 담근 캄보디아식 젓갈이다. 만드는 과정은 먼저, 생선의 대가리, 지느러미 및 내장을 제거한 다음에 깨끗이 씻어서 커다란 대소쿠리에 담는다. 그리고 마치 와인용 포도를 밟듯이 발로 마구 짓밟아서 짓이긴 다음에 하루 동안 햇볕에 건조시킨다. 마지막으로 소금에 절여서 커다란 항아리에 담고 대나무로 엮은 뚜껑을 닫아 발효시키면 된다. 발효 기간은 20일 내지 최장 3년까지 둘 수 있으며 오래 될수록 최상품으로 거래된다.
이렇게 제조된 뿌러혹은 곰삭아진 젓갈 그대로 또는 잘게 다져진 페이스트 혹은 각종 육고기와 다져서 익힌 음식 등으로 시장에서 팔린다. 식당이나 가정에서는 각종 첨가물과 함께 절구로 곱게 찧어서 생으로(뿌러혹차으) 혹은 볶거나(뿌러혹찌은) 또는 구워진(뿌러혹앙) 형태로 식탁에 오른다. 이처럼 짭조름한 뿌러혹과 집 주변에서 채집한 야채 무더기만 있으면 밥 한두 접시쯤은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가난한 서민들은 그렇게 끼니를 해결했다고 하니까 마치 간장 한 종지에 고봉밥을 먹어치우던 한국 드라마 속 극빈층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뿌러혹을 언제부터 담가 먹었을까? 아마도 메콩강과 똔레삽이라는 풍부한 어족자원의 보고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아 캄보디아 문명의 번성과 동시에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도, 중국, 페르시아, 유럽 등의 음식문화가 접목되고 현지화 되면서 토착적인 젓갈도 함께 어우러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에서 남하하여 유입된 베트남인이나 중국인들은 뿌러혹의 냄새와 맛을 꺼린다고 하니 확실히 뿌러혹은 캄보디아 음식의 정통성을 살리는 요소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뿌러혹이 첨가된 음식을 외국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 으레 캄보디아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캄보디아 사람 다 됐네!’라고 감탄하곤 한다. 그리고 해외의 유학생이나 근로자들이 휴가를 내서 캄보디아를 들르면 여행가방에 뿌러혹을 담아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한 뿌러혹의 냄새는 고국의 가족친지와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촉매제일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사람들은 뿌러혹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미국과 유럽 등지의 캄보디아인들을 위해서 뿌러혹은 수출되고 있다.
최초 작성일: 2020년4월10일
1차 수정: 2020년10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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