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놈반쪽이라고 대답한다. 2009년에 처음 2년 동안 캄보디아 살이를 시작할 때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면 반나절이상 걸려야 도착하는 바탐방주에서 살았다. 당시 프놈펜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입하거나 공적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버스를 탈 때면 중간 중간마다 내려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때마다 깜뽕츠낭주의 어느 휴게소에서 파는 2천리엘짜리 놈반쪽은 한 눈에 보기에도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알뜰하면서도 실속있는 음식이어서 정말 큰 위안이 됐다.
사실 ‘놈반쪽’은 캄보디아식 쌀국수면을 일컫는 말이다. 설화에 따르면, 늘상 물에 잠기는 곳에서 자라는 벼를 수확해야 했던 부부가 밥을 지어도 맛이 없자 국수면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왕궁까지 전파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벼의 이름을 따서 ‘놈써사이쓰러으위어’였는데 노파가 신분이 높은 왕자에게 먹여 주었다고 해서 ‘유모가 먹여준 국수’라는 의미로 ‘놈스넘반쪽’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은 ‘놈반쪽’으로 되었다. 또 중국으로 전래된 과정을 소개하는 설화에서는 역사적 구체성까지 띄어서 동아시아 쌀국수의 원조임을 내세우는 듯하다.
이러한 쌀국수면에 야채와 육수를 곁들여서 먹으면 ‘놈반쪽 썸러크마에’라고 불리는데 ‘캄보디아 쌀국수’라는 뜻이다. 국수용 그릇에 신선한 각종 채소들, 이를테면 채썬 오이와 바나나꽃, 대충 썬 미나리와 수련 줄기, 줄콩, 숙주, 연보라색 및 노란색 꽃잎, 바질과 민트 등의 잎채소를 잔뜩 깔고, 그 위에 보슬보슬하고 촉촉한 놈반쪽을 올린 다음 그 지역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생선을 오랫동안 푹 삶아서 코코넛 크림과 땅콩, 액젓 등으로 양념해서 만든 육수를 그릇의 3분의 1정도만 잠기게 살짝 끼얹는다.
이제 기호에 따라 매운 생고추를 살짝 깨물어가며 야채와 면을 버무려서 먹으면 된다. 이때 아삭한 야채 사이로 민트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부드럽게 씹히는 면의 식감은 소화를 더없이 부담없게 한다. 그러니 이른 아침에 가볍게 식사하기에도 부담이 없고 이동 중에 급하게 먹을 때도 배탈이 난 적 없다. 그런데 이 음식은 프놈펜에서 흔한 중국계 캄보디아인의 음식점에서는 맛볼 수 없다. 그들은 미원이 잔뜩 첨가된 육고기 국물에 마른 쌀국수 면을 빠트려서 향채를 가미한 ‘꼬이띠우’를 파는데 이것은 캄보디아식 쌀국수가 아니다.
진짜 캄보디아 전통 쌀국수 ‘놈반쪽 썸러크마에’는 주로 재래시장이나 관공서 및 학교의 허름한 식당 또는 아침이나 점심 무렵 길 한편에서 쪼그려 앉아 주문받는 길거리 행상인 노파에게서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그녀들 주변에는 가난한 학생들과 허름한 복장의 노동자들이 남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플라스틱 그릇을 부여잡고 입안 가득 음식을 밀어넣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이렇듯 놈반쪽은 캄보디아에서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고 오늘날 이 음식의 힘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지난 6월 3일, 아침 일찍부터 꺼삣 섬에서는 대학교 졸업식이 거행됐고 당시 행사를 주관하던 훈센 총리는 일장 연설을 통해 캄보디아의 전통을 수호하고 캄보디아인의 단합을 위해서 놈반쪽을 함께 먹자고 수십 차례나 강조했다. 덕분에 조식을 건너뛴 좌중들은 보통보다 더 절박한 배고픔에 시달렸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 관공서마다 놈반쪽 먹기 열풍이 일었고 신문에서는 전CNRP 관계자들이 훈센 총리와 CPP가 국가적인 놈반쪽 함께 먹기 파티에 자신들을 배재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며 놈반쪽을 먹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렇듯 음식 하나에 정치적 해석이 난무할 정도로 놈반쪽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음식이다. 요즘은 캄보디아 전통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하고 시원한 실내에서도 고향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는 내부의 장식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놈반쪽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보통의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서 이런 음식도 중저가 레스토랑에서 화학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천연의 음식이라는 자부심으로 각광받고 있는 듯하다.
최초 작성일: 2019년8월5일
1차 수정: 2020년4월30일
2차 수정: 2020년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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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칼럼 [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및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이 발간한 "캄보디아의 이해"(2020) 책자에도 수록된 내용으로서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내용을 참조하실 때 꼭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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