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지인의 가족 분께서 서고를 정리하셨던 모양이다. 그때 아마 어떤 기관에 도서 전체를 기부하기 전에 나에게도 골라서 가져가라고 연락을 하셨다. 그래서 평소에 관심 있던 캄보디아 관련 책 가운데 십여 권을 골라 데려왔다. 그 중 제일 먼저 읽은 책은 『이야기 인도신화』(김형준 엮, 1994)라는 책이다.
한국에서 처음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 인도의 신화에 대해서 지식이 없었다. 앙코르와트에 가기 전 선수학습 차원에서 읽어본 여행 책자에서 여러 가지 벽화들과 함께 소개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익숙하지 않은 스토리와 맥락 없는 이야기 구조는 나의 배경지식이 얼마나 전무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브라만, 쉬바, 비슈누, 크리슈나, 인드라, 하누만 등의 신화적 인물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당최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만 했다.
(......) 초기의 인도인들은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자각하게 되고 그것을 곧바로 카르마(업)라고 하는 독특한 사상으로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세계는 바로 이러한 카르마에 의해 끝없이 지속되며 그 속에서 인간 역시 무한히 계속되는 생의 반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인도인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카르마에 의한 윤회의 삶 속에서 그것 자체를 벗어날 수 없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끈질긴 노력은 결국 해탈이라는 독특한 인도 사상으로 나타난다. 해탈이라는 희망의 발견은 이제 신보다 깨달은 인간을 더욱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바로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후대에 신보다 깨달은 성자들이 더욱 위대한 위치에 놓이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불사에 대한 바람은 보다 가능한 형태로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인도신화는 오늘날 우리가 인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풍습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계급에 의한 신분 구별인 카스트 제도나 남편의 죽음을 아내가 뒤따르는 사티 제도 그리고 요가 수행자들이 온몸에 재를 바른 채 화장터에서 수행해야 하는 이유 등이 신화속에서 다소 신기한 이론을 가지고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인도의 사상이나 사회적 관습 등을 알려고 한다면 그들의 신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이야기 인도신화』(김형준 엮, 1994)의 '엮은이의 말' 부분
책의 차례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제국 시기 통치자들의 이름자와 유사한 신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힌두교 3대 신인 브라흐마, 쉬바, 비슈누 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를 건립했던 수리야바르만 2세는 '수르야(Surya)-태양의 신'과 연관있고 불사의 감로수 등의 이야기는 캄보디아 사원 벽면 조각상의 원천이다. 그 중 '가네샤(Ganesa)-코끼리 형상의 신'을 통해서 몸통은 사람인데 얼굴이 코끼리인 조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원한 파르와티(쉬바의 부인)는 남편인 쉬바에게 간청했고 쉬바는 출가한 수행자로서 자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대신 쉬바는 파르와티의 붉은 옷을 잘라 그녀가 원하는 아들의 모습을 한 인형을 만들어 주었고, 그녀는 그 인형을 안고는 "당신은 제가 이런 옷조각으로 만든 아이로 만족할 줄 알았나요?"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아이는 생명을 지닌 아이로 변해 움직였고 파르와티는 비로소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이는 머리가 잘린 채 죽어버렸고 파르와티는 슬픔으로 가슴 아파했다. 남편인 쉬바는 아이의 머리를 몸통에 붙여서 살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별안간 하늘에서는 "쉬바여, 만일 그 아이를 다시 살리고 싶거든 그대는 그 아이의 어깨 위에 다른 머리를 얹도록 하여라."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쉬바의 지시를 받은 황소 난딘은 하늘의 계시가 향하는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코끼리(인드라 신의 소유)의 머리를 잘라와서 아이의 몸통에 붙였다. 이렇게 쉬바의 아들로 모든 신들의 경배를 받으며 "가네샤(Ganesa; 만군의 지배자)"가 되었다.
출처: 『이야기 인도신화』(김형준 엮, 1994)의 264-272쪽 요약
이외에도 『이야기 인도신화』(김형준 엮, 1994)는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캄보디아의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조각상의 출처를 짐작하게 한다. 앞으로 두세 번 이상을 더 읽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인도신화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현재의 코로나 19 사태가 캄보디아에서 수습이 되면 씨엠립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앙코르 고고학 유적지를 탐사하고 싶다. 그때는 조용히 멀찍이서 사원 벽면의 조각이 품고 있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빙긋이 미소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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