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문학: 크메르 무협소설 “국경의 큰 도둑”
“국경의 큰 도둑[머하짜오너으똘다엔]”은 1865년 시암(태국)의 지배를 받았던 반띠민쩨이주 세레이싸오포안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크메르인들 사이에서는 태국에 대항하는 음모 술수가 분출됐다. 이 소설은 쌍싸왓 작가가 쓴 크메르 무협 소설로, 1955년에 처음 출판됐다.
초야에 묻혀 사는 이빨 빠진 백전노장 위쎄는 젊은 시절 용감한 군인이었다.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희생으로 공적 의무를 잘 이행하며, 양심과 책임감, 그리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명예를 구걸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점차 국가 사령관의 지위에 올랐다. 베트남, 시암, 라오스와의 모든 전쟁에서 위쎄는 승승장구하며 지휘관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아침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매국노’의 집을 보면서 무력감에 젖는다.
이 집의 주인은 “뿌레아깜뿟”으로, 그는 시암에서 공부한 후 자신의 국적을 시암으로 변경한 크메르인이다. 그는 크메르 문명과 역사, 위대함을 완전히 잊고 크메르 사람들을 체포, 위협, 강탈, 서로 죽이는 등의 행위를 통해 크메르족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 캄보디아가 시암 정부를 대신하여 반띠민쩨이주 세레이싸오포안 도시를 통치하게 된 이래로, 국왕도 온갖 쾌락(여자, 술, 도박, 음악, 춤)에 탐닉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크메르족에게 폭정을 행사했다.
위쎄는 떼위라는 사랑스러운 딸과 살고 있다. 딸은 뿌레아깜뿟의 두 아들과 삼각관계인 가운데 형인 미언과는 밤마다 만나면서 아이를 가졌다. 이를 질투한 동생 까마는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위쎄에게도 알리지만, 위쎄는 미언이 캄보디아와 크메르인을 생각할 줄 아는 애국자임을 알고는 딸의 결혼식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그 사이 뿌레아깜뿟은 미언을 호출해서 시암을 침략한 버마 군을 무찌르도록 명령했다. 아버지에게 떼위와의 결혼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미언은 동생 까마에게 아내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전장으로 떠났다.
까마는 계속적으로 자신을 거절하는 떼위를 마을 밖으로 추방했다. 떼위는 딸을 출산하여 버똠이라고 이름짓고 다시금 행복했다. 그런데 깜박 잠든 사이에 누군가 딸을 납치했고 동시에 미언이 개선했다는 소식이 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남편은 안 오고 까마가 갓난아기인 버똠에게 칼을 겨누며, 떼위에게 미언이 찾아오면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시켰다. 그리고는 그녀의 집에 미언이 찾아오자 까마는 떼위가 자신과 만나고 있다고 거짓을 말했다. 둘은 칼을 겨누며 크게 싸운 후에 치료를 위해 각각 다른 곳으로 후송됐다.
아이를 돌려받은 떼위는 미언을 찾아 바탐방으로 떠났다. 한편 뿌레아깜뿟은 까마에게 중상을 입힌 미언을 죽여서라도 체포하도록 군대에 명령했다. 정부군과 맞서게 된 미언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붙잡히게 됐다. 그때 사촌인 카떼야니가 나서주지 않았다면 미언은 동생인 까마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카떼야니는 미언을 사랑했기 때문에 뿌레아깜뿟에 맞서지 말 것을 설득했지만 미언이 듣지 않자 동생인 까마와 결혼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한편 미언의 부하들은 시암의 억압을 없애고 크메르족을 돕기 위해 봉기할 것을 대중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뿌레아깜뿟이 조직한 파티에 잠입해서 미언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떼위는 까마의 추적을 따돌리고 미언의 스승 따끼리쑤메루의 도움으로 미언과 재회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언은 카떼야니가 아버지 뿌레아깜뿟을 죽이려는 것을 저지하고, 카떼야니에게 인질로 붙잡힌 떼위를 구출했다. 그 순간 미언의 스승은 캄보디아 상황이 성공적이라고 알려 주었고, 미언은 떼위를 말에 앉히고 개선했다.
최초 작성일: 2025년04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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