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핼러윈: 저주받은 존재, “압(Aap)”
귀신은 진심으로 질색이지만 핼러윈도 다가오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무척이나 즐겨보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기에 모른 척할 수가 없다. 특히 최근 수업 시간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 중 일부가 눈을 부릅뜨고는 머리가 동동 떠다니는 ‘압(Aap)’이라는 존재가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은 가히 최첨단 21세기를 함께 사는 MZ 세대라고 할 수 있는지 아연실색하게 했다. 어차피 캄보디아는 모든 삶에서 살아 있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가 공존한다고 믿는 사회이다. 그런데 ‘압’은 살아 있는 존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존재기도 해서 좀 애매하다.
캄보디아어로 “압(Aap/Arp/Ahp/Ap)”은 동남아시아 민속에 등장하는 야행성 여성 혼령이다. 젊고 아름다운 두상을 한 채 목뼈 아래로 인체 장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기괴한 형상이다. 태국에서는 끄라쑤우(Krasue)라고 불리는데 캄보디아에서와 달리 살아 있지 않은 존재이다. 상업적으로 상당히 흥행하는 공포물의 아이템으로 코믹과 멜로 장르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또한 동류의 “끄라항(Krahang)”이라는 남성도 있는데, 다만 여성과 달리 사지육신이 멀쩡하다. 둘다 낮에는 보통의 인간으로 살지만, 밤만 되면 사람을 홀려서 위해를 가한다.
압은 캄보디아 민속에서 일반적으로 반은 혼령이고 반은 인간이다. 낮에는 인간이지만 밤이 되면 기괴한 형상으로 먹이를 찾아 공중에 떠다닌다. 주로 냄새가 진동하는 피, 생고기, 가축, 시체, 똥, 태반, 갓난아기 등을 탐욕스럽게 갈구한다. 이에 따라 갓 출산한 여성과 아기가 표적이 될 수 있어서 임산부가 있는 집 주변에는 뾰족한 울타리나 가시덤불을 설치한다고 한다. 압이 주변을 얼씬하다가 매달린 창자가 뾰족한 가시에 걸리면 상처를 입고 퇴치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 후에는 아기집이었던 태반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져가서 압이 절대로 찾을 수 없도록 깊이 매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압이 태반을 먹게 되면 아이와 그 가족에게 큰 재앙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녀, 사악한 여성 혼령, 그리고 흑마법 또는 흑마술’을 뜻한다. 캄보디아에서 압은 태국에서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강력한 흑마술을 수행하다가 실패해서 그 부작용으로 흉측한 저주가 내려진 마녀라고 여긴다. 또는 사악한 거래를 통해 흑마법을 전수받는 대가로 밤마다 사악한 악령에게 혼을 빼앗기는 여성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압이 새롭게 사람으로 환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저주를 다른 여성에게 옮겨야 한다. 자신의 딸, 손녀, 친척 또는 주술을 행하는 다른 여성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침이나 땀 등의 체액에 노출되어 저주가 전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세계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지만, 압에 대한 믿음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사고체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외딴 시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살해되거나 마을에서 쫓겨났다. 실제로 2013년 말, 라따나끼리주 오야다으군의 자라이(Jarai)족 부부가 흑마술을 행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추방되었다. 2014년 초, 깜뽕스프주에서 한 남성이 흑마술을 행했다는 혐의로 참수형을 당했다. 사람들이 압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공포 영화로는 “압(Neang Aap; 2004)”, “압의 승계자(Tieyiet Aap; 2007)”, “쌔끈한 압(Aap Kalip; 2009)”, “불 지르는 압(Phlerng Chhes Ap)”, “헬멧 쓴 압(Ahp Wearing A Helmet; 2012)” 등 다양하다. “Neang Aap”은 애인이 살해당하고 자신도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압’을 만나 저주에 걸려서 일당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Aap Kalip”은 몹쓸 짓을 당한 매력적인 여성이 ‘압’에 씌어 무고한 청년들까지 공격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처단하려 하자 공개적으로 과거를 밝히고 가해자를 지목함으로써 한을 풀고 소멸하는 내용이다.
최초 작성일: 2023년10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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